
[TV리포트=강해인 기자] 1940년대의 소녀들을 소환해 뭉클한 감동을 전한 영화가 관객과 만났다.
아픈 기억은 빨리 잊으라고들 한다. 생각할수록 고통스럽고, 이미 지난 것을 되돌릴 수 없기에 합리적인 태도 같다. 그러나 고통스러워도 응시해야 할 것들이 있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일제 강점기에 모든 걸 잃어야 했던 소녀들을 소환해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어린 순옥(박서경 분)과 정임(최주은 분)의 시간을 따라가며 1942년의 어느 평범한 날을 카메라에 담는다.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설렘을 숨기지 못하고, 놀기 좋아하는 등 순옥과 정임의 관심사는 지금의 소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과 달리 ‘여전히 찬란하게’는 소녀들의 일상을 밝은 톤으로 연출했다. 일본군과 암울한 사건들이 소녀들을 낭떠러지로 내몰고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그런 시대에 일지라도 당대의 청춘들도 밝고 꿈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형식적으로 현실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뮤지컬 신은 이런 감성을 강화하며 차가운 시대를 온기로 감싼다.

송일곤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모르기에 다른 시대의 소녀들처럼 해맑은 면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보이길 바랐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배우 박서경과 최주은은 순수의 시절을 강렬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이 미션을 해냈다. 객석까지 천진난만한 소녀들의 에너지를 전하며 관객을 미소 짓게 한다.
그럼에도 관객은 이들이 겪을 미래를 모를 리 없다. 예정된 불행이 다가오고 있는 관객과 아무것도 모르는 순옥과 정임의 웃음이 대비되며 영화의 비극성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밝은 톤 앤 매너 속에서 더 진한 슬픔을 맛보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찬란하게’가 아픈 과거를 소환한 방식은 독특했다. 여기에 노년의 순옥과 정임의 서사가 얹어지면서 관객의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연기 경력 65주년을 맞이한 국민 배우 김혜자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김혜자는 천천히 상대를 응시하는 표정과 가볍게 건네는 대사만으로도 순옥과 정임의 60년 우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동시에 못 이뤘던 꿈, 지키지 못했던 것들을 향한 회한의 정서가 담겨 있는 감정 연기로 역사가 남긴 상흔 관객이 체감하게 했다.

오랜 시간 활동하며 쌓아온 관록으로 평범한 일상 신에 역사의 무게를 더해내는 대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왜 이 작품에 김혜자가 꼭 필요했는지 깨달을 수 있다. 김혜자가 걸어온 시간이 만든 아우라가 순옥과 공명하며 대체할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다른 시간대의 순옥과 정임이 간섭하고 하나로 포개어지면서 영화의 감성은 최고조에 이른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일제강점기를 통과한 이들을 대상화·타자화 하지 않았다. 신예 박서경·최주은의 순수함으로 그 시대의 인물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는 걸 보여주며 동질감을 갖게 했다. 동시에 김혜자·차미경의 연륜으로 비극적인 시대 이후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이 영화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겠다고 말하며, 아픈 역사를 통과한 이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암울한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이 따뜻했고, 그래서 응원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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