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소음으로 쌓아 올린 긴장감…소통의 어려움을 사운드로 풀어낸 ‘조용히 귀 기울이면’ [31th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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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침묵을 내세워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보여준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꽤 많은 갈등과 불화는 간단한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일어나고는 한다. 고민 끝에 준비했으나 정작 필요할 때 입 안에서 말이 길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 누군가와 멀어진 경험이 있다면 이 영화가 던지는 침묵에서 많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영화 ‘조용히 귀 기울이면’은 소리에 민감한 남자 닌이 소리를 내지 못해서 일어나는 상황을 따라간다. 소리가 어느 정도 커지면 빛이 들어오는 소음 측정기를 관리하는 닌은 아내와 불화로 헤어진 상태다.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그것을 자책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소리가 커져야 빛나는 소음 측정기처럼 닌도 목소리를 내야만 삶이 어둠을 뚫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닌은 침묵을 지키고, 그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간다.
언급한 닌 뿐만이 아니라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가까운 이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대에 올라 큰 목소리로 연기해야 하는 부부는 정작 서로에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연기할 때는 서로 대사를 주고받지만, 집 안에는 적막만이 맴돈다. 다른 인물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홀로 있을 때는 드럼을 치며 소리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는 정작 가까운 이들 앞에서는 말이 없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대화가 줄고, 그로 인해 서로가 점점 멀어진다. 이 과정에서 침묵이 인물들을 서서히 잠식해 나가는 걸 볼 수 있다.

영화 속 카메라는 굉장히 느리고, 또 움직임이 적다. 관객이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과 침묵을 긴 시간 응시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정적이 불안감을 조성한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리들로 채워져 있다. 제목처럼 귀를 기울였을 때 들을 수 있는 일상의 소리를 이 작품은 성실히 스크린에 이식했다. 정갈하면서도 정교한 미장센과 구도를 바탕으로 화면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는데, 구역별로 들을 수 있는 사운드가 한 화면에 모두 담긴 듯한 인상을 준다.
대부분의 실내 장면에서는 창과 문이 등장하고, 이를 활용해 ‘조용히 귀 기울이면’은 이 작품만의 영상미를 구축했다. 창과 문은 그 자체로 외부의 환경과 자연을 담는 프레임이 되거나 빛이 오가는 통로가 된다. 이를 활용해 명암 대비를 뚜렷하게 하면서 화면의 레이어를 두껍게 했다. 덕분에 단조로울 수 있는 비주얼에 입체감을 더할 수 있었다. 영화엔 거대한 사건 혹은, 긴박하게 전개되는 사건이 없다. 사진처럼 멈춰있는 듯한 공간을 바라보며 화면 곳곳의 여백을 관객이 스스로 채우고, 각자의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
‘조용히 귀 기울이면’은 인물들의 거리와 친밀감을 소리로 보여준다. 침묵이 지속될수록 인물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소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큰 지 체감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닌이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신에서는 몽환적인 사운드가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고요한 밤을 가득 채우는 식당의 음악과 소음은 소시민들의 내재된 욕망이 분출되게 것처럼 표현되는 등 사운드로 인물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대사가 아닌 주변음으로 서사와 긴장감을 쌓아 올렸고, 이를 통해 인간 관계와 소통의 어려움을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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