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토론토영화제 ‘접수’…날카로운 시선으로 AI 시대를 관통한 스릴러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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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연상호 감독이 또 한 번 관객을 놀라게 할 준비를 마쳤다.
연상호 감독이 인간 본성의 심연을 파헤치는 영화 ‘실낙원’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 개봉해 59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군체’ 이후 5달 만의 신작이다.
이 작품 역시 개봉 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되어 월드 프리미어 전 회차(4회차, 약 2,300석) 전석 매진이라는 폭발적인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저예산 미스터리 영화 ‘얼굴’에 이어 2년 연속 토론토영화제를 방문한 연상호 감독은, 올해 ‘군체’로 제79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는 등 올해에만 세계 양대 영화제를 동시에 접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신작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흥행작 ‘부산행’·’반도’·’군체’ 등과는 결이 다르다. 거대한 재난이나 초자연적 괴물 대신 인간 내면의 도덕적 딜레마와 상실감을 스크린에 이식해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해외 평단은 “SF, 드라마, 호러가 흥미롭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관객에게 수많은 도덕적 딜레마를 던진다”,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모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암울하면서도 진정으로 섬뜩하다” 등의 찬사를 보냈다. 곧 국내 관객과 만나게 될 ‘실낙원’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어머니가 직접 적어 내려간 세 페이지짜리 서사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명절날 어머니가 건넨 연습장 속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연상호 감독은 그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구매했고, 이후 세 가지 버전으로 확장했다.
그중 두 번째 버전이 오성은 작가의 소설 ‘블랙 인페르노’로 결실을 맺었다. 이 작품은 캐나다 접경 지역의 산간 마을을 배경으로 수사극의 비중이 컸다. 연상호 감독은 소설을 한국 배경의 각본으로 다시 쓰면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영화 ‘실낙원’이 탄생하게 됐다.
밀턴의 동명 서사시에서 착안한 제목처럼, ‘실낙원’은 완벽했던 낙원에서 쫓겨난 후 비로소 자신의 불완전함과 마주하는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연상호 감독은 “인공지능이 극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했고, 그중에서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심연을 탐구해 보고 싶었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캐릭터는 9년 전 캠핑스쿨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 분)이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10살에 멈춰 있는 가상현실 속 아들에게 의지해 삶을 버티고 있다.
그러던 중 류소영 앞에 9년 만에 진짜 아들 선우(배현성 분)가 돌아오면서 극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기억 속 천진난만했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낯선 아들 앞에서 소영의 일상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린다.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는 배우들의 정교한 내면 연기는 ‘실낙원’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지옥’ 시리즈와 ‘정이’를 거치며 연상호 감독의 강력한 페르소나로 자리 잡은 김현주는 인공지능이 만든 환영과 서늘한 현실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류소영 역을 맡았다.

그는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세밀하게 짚어내며 캐릭터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체감하게 했다. 과장된 표현을 배제하고 인물의 절박함을 절제된 톤으로 풀어내며 관객을 잔혹한 비극의 중심부로 끌어당긴다. 이에 김현주는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결이라고 생각해서 하게 됐다”라고 캐릭터에 관한 생각을 전했다.
9년 만에 돌아온 낯선 아들 선우 역의 배현성은 첫 영화 주연작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순수함과 서늘함을 오가는 양가적인 얼굴로 오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두 배우는 극 중 서먹하고 불안정한 관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감정을 쌓아 올렸다.
‘실낙원’은 미장센 측면에서도 독특한 질감을 구축했다. 제작진은 쇠락한 소도시의 황량함을 담아내기 위해 서울과 경기, 강원 일대를 오가며 가상의 도시 ‘무산시’를 완성했다. 특히 류소영의 내면이 형상화된 폐탄광 내부 세트는 오래된 폐목과 흙, 백열전구의 스산한 조명으로 채워져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는 상실과 기억, 그리고 AI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년 연속 토론토 관객들을 매료시킨 연상호 감독의 서늘한 영화 세계에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실낙원’은 오는 21일 개봉해 관객과 만난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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