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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한 현실을 위로하는 동화 같은 멜로…청춘의 시간 소환한 ‘파반느’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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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순수의 시절에서 감정을 길어 올린 멜로 영화가 시청자와 만났다.

‘파반느’는 천천히 걸어가듯 느리게 진행되는 궁정 무곡을 뜻한다. 이를 제목으로 내세운 영화 ‘파반느’도 느림의 미학을 내세워 인생의 변곡점에 선 이들의 시간을 곱씹게 한다. 순수의 시절, 서로의 인생에 빛이 되어준 인연들을 카메라에 꾹꾹 눌러 담았다.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던 순간을 조명하며 빠르게 살다 놓쳐버린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어두운 시간을 통과 중인 세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무용수의 꿈을 접고 방황 중인 경록(문상민 분), 사람들에게 무시받으며 지하창고서 궂은 일을 하는 미정(고아성 분), 주차 안내 요원으로 베짱이처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요한(변요한 분)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영화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를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198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상처 입은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고,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히 묘사해 호평을 받았다. 소설의 감정선에 감명받았다는 이종필 감독은 원작의 본질을 가져오면서도 시대 배경을 바꾸고 영화만의 설정을 추가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먼저, 세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반영한 듯한 공간과 미장센이 눈에 띈다. 경록·미정·요한은 백화점 지하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주인공들이 빛이 들지 않는 지하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설정은 불안함 탓에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그들의 처지와 닮았다. 그 밖에도 인물들이 머무는 자취방 등의 공간도 음울하며 폐쇄적이라 답답하게 구현됐다. 칙칙한 공간을 통해 상처 입고,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이 더 잘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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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반느’는 이 어두운 대기 속에 희망을 건져 올린다. 경록과 미정의 사랑이 싹트고, 요한과의 우정이 깊어지면서 암울한 시간을 극복해 나가는 서사를 볼 수 있다. 이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고민을 털어놓고, 각자의 상처를 봉합한 뒤 앞으로 나아간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청춘들이 한계를 인정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화면 너머의 시청자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특히, 자존감이 떨어진 이들에게 인생의 속도와 방향에 관해 말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앞서 언급한 칙칙한 공간은 인물들이 모일 때 분위기가 급변한다. 주인공들이 홀로 있는 공간과 달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허름함 속에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표현됐다. 경록·미정·요한이 추억을 만드는 호프집은 빈티지한 소품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경록과 미정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공중전화, LP 가게 등의 공간도 아날로그적인 요소로 아련한 분위기를 강화했다. 칙칙한 현실 속에 주인공들이 교감하는 순간만큼은 서정성이 극대화돼 감수성을 자극한다.

영화는 도파민 터지는 순간과 긴장감 있는 사건이 적은 편이다.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없고, 그래서 미래가 불확실한 이들의 불안함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극적인 사건이 아닌, 인물들의 진심이 천천히 닿아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종필 감독은 청춘들의 서툴고 미숙한, 그래서 더 설레는 풋풋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청춘들이 서로 연대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서사에서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파반느’는 짧지만 강렬한, 그래서 영원히 기억될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담백하게 담았다. 현실적인 질감 위에 차분히 감정을 쌓아가는 덤덤함이 돋보이며, 최근에는 많이 볼 수 없었던 톤의 멜로 영화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시절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사랑에 관해 말한다는 점에서 정직하고 동화적인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청춘의 시간과 그리운 인연을 곱씹어 보고 싶은 이들, 혹은 누군가의 온기와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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