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리포트=허장원 기자] 우리는 흔히 교과서나 공문서에 기록된 역사의 공식 발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눈앞에서 펼쳐진 사건의 명확한 장면들, 그리고 국가 기관이 수립한 결론은 오랫동안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고착되어 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수사 결과 뒤편, 혹은 권력의 막후에서 정교하게 가공되거나 은폐된 또 다른 진실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이고 파급력이 컸던 사건을 다룬 허진호 감독의 신작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뒤흔든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이면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과연 우리가 수십 년간 알고 있었던 역사적 진실은 완전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특히 해당 작품은 8월 31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사전 예매 관객수 33,141명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예매율 1위에 등극했다. 이는 여름 극장가를 이끈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를 비롯한 국내외 화제작들을 넘어선 것으로, ‘암살자(들)’의 뜨거운 상승세로 새로운 흥행 주자의 탄생을 알린다.

▲ 1974년 8월 15일, 그날의 총성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허진호 감독이 10여 년간의 치밀한 자료 조사와 준비 끝에 선보인 영화 ‘암살자(들)’는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미스터리 실화 추적극이다.
영화는 당시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재일교포 문세광의 단독 범행’이라는 수사 결과 뒤에 숨겨진 의문의 정황들을 픽션과 실화의 절묘한 경계에서 풀어낸다. 사건 발생 당시의 혼란스러운 현장 감각과 이후 속전속결로 진행된 수사 과정에서의 치명적인 허점들을 세 인물의 입체적인 시선으로 교차시키며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현장의 균열을 포착한 수사관 박철구(유해진 분)는 증거물과 정황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가장 먼저 직감한 인물이다. 상부의 강력한 압박과 정권 차원의 가이드라인 속에서도 형사로서의 양심을 걸고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집념을 보여준다. 냉철한 기록자 사회부 기자 김재환(박해일 분)은 권력의 공식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보도 통제 속에서도 닫힌 문 뒤에 숨은 진상을 언론인의 냉정한 시선으로 추적한다. 사건의 판을 흔드는 중요한 정황 제보들을 파헤치는 관찰자이자 조력자다. 마지막으로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쥔 인물 한영일(이민호 분)은 거대한 진실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사건의 숨겨진 배후, 그리고 권력 막후의 인물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시청자들에게 압도적인 의문과 몰입감을 선사하는 핵심 축이다.

▲ 세 배우의 압도적 연기 시너지와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
그동안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덕혜옹주’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미세하고 섬세하게 담아내는 데 탁월했던 허진호 감독은 이번 신작을 통해 선 굵은 실화 추적 미스터리 장르에서도 특유의 연출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 합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유해진은 권력의 폭압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으려는 밑바닥 수사관의 고뇌와 분노를 날것 그대로의 연기로 완성했다. 박해일 역시 시대의 어둠 속에서 진실을 기록하려는 언론인의 신념과 갈등을 특유의 깊은 눈빛과 담담한 톤으로 완벽히 표현했다. 이민호의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이는데, 사건의 핵심 키를 쥐고 극 전체의 미스터리를 끌고 가는 입체적인 인물로 분하여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암살자(들)’의 제목에 포함된 괄호 ‘(들)’은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한 개인에게만 시선을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이 거대한 판을 기획하고, 방관했으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했는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진다.
역사 속 거대한 권력의 그늘 아래서 이름 없이 소비되고 희생된 개인들, 그리고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기록을 어떻게 가공하고 편집할 수 있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진짜 암살자는 총을 쥔 인물 한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덮고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시대와 막후의 시스템 전체였음을 영화는 지적하고 있다. ‘암살자(들)’은 오는 9월 23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허장원 기자 / 사진= 영화 ‘암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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