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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기에, 가장 뚜렷이 존재한, ‘참교육’ 김균하 [돋보기: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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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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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짧은 순간으로는 부족한,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자꾸만 시선을 붙잡는 배우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 <돋보기:인터뷰>.

지금까지 몇 번의 생을 살았을까. 자신을 지움으로써 존재하는 인물을 살아내는 배우, 김균하는 그렇게 수많은 삶을 살아왔다. 수많은 세계에 존재해 왔다. 

영화와 드라마는 허구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진심이 모인다. 그렇게 탄생한 또 다른 세상에서 배우들은 그곳이 유일한 현실인 것처럼 기꺼이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스크린과 브라운관, 스마트폰을 통해 그 세계와 만난다.

김균하는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TV리포트 사옥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작업반장 김수겸을 연기한 그는 선량함과 섬뜩함, 공포와 연민이 공존하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수겸은 살인자다. 그럼에도 ‘참교육’을 본 많은 이가 수겸을 기꺼이 안아줬다. 그건 수겸이 사람으로서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가능했다. 그 순간, 화면 속에는 배우 김균하가 아니라 김수겸만이 남았다.

그는 “수겸이를 안아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수겸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고 진심을 담은 인사를 전했다.

1999년 아역배우로 데뷔한 김균하는 어느덧 28년째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오랜 무명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가 스타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참교육’ 이후 쏟아지는 관심에도 그는 “길어야 3개월일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모든 배우가 그렇듯 그 역시 언젠가 자신의 시간이 올 것이라 믿었다.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모습을 상상했고, 넷플릭스 ‘소년심판’으로 처음 얼굴을 알렸을 때는 기회가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참교육’으로 주목받기까지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6살 때부터 연기를 했다.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계속 연기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연기 말고는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며 “좌절하고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몇천 번, 몇만 번인 것 같다. 3초를 그만둔 적도 있고 3년을 쉰 적도 있다. 그만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김균하는 그 시간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도 배우에게는 다음 인물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작품은 하나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경험치를 쌓는 것. 그렇게 쌓인 것들을 가지고 다시 작품으로 돌아간다”고 밝힌 김균하는 “결국 연기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고 미소 지었다.

오랜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연기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었다.

지난 5월 결혼한 김균하는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신혼여행 중에 ‘참교육’이 공개됐다. 아내와 함께 작품을 보자마자 ‘잘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도 아내는 누구보다 먼저 배우 김균하를 믿어준 사람이었다. 

김균하는 “‘참교육’ 전까지 거의 2년간 침대에만 있었다. 우울감도 있었고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며 “그때 아내가 늘 ‘너는 연기를 정말 잘해. 분명 잘될 거야. 시기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내 눈에는 보여’라고 말해줬다.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진심으로 믿어준 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믿음과 가득한 사랑은 김균하의 원동력이 됐다.

▲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 존재하기 위하여

김균하의 연기 속에는 김균하가 없다. 존재하지 않기에 가장 뚜렷이 존재한다는 것, 역설적이지만 그의 연기가 잔상에 남는 이유다.

배우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실존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감독과 스태프가 공들여 만든 세계 안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김균하는 그것이 배우의 역할이라고 봤다.

그는 “설령 SF 장르라고 해도 작품을 보는 그 순간은 존재하는 인물을 만났다는 착각이 들게 해야 한다. 그게 배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면 나는 그 세상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 환기해 주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참교육’ 속 김수겸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균하는 “수겸에게는 ‘척’이 없었다”며 “촉법소년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반가웠을 것이다. 군대에서 후임을 처음 만난 것처럼 장난도 치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데, 또 괜히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 중에서 수겸이 자기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 행동도 계산된 것이 아니었다. 감정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신을 위협하는 순간, 수겸의 몸에 남아 있던 과거의 기억도 함께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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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하는 “교권보호국이 무엇을 하는지 수겸이 정확히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자신 같은 아이들이 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공감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촉법소년들의 모습에서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겁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났다. 때리려고 다가왔을 때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피하는 것도 맞았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인상적이었던 숟가락 장면도 그렇게 완성됐다. 김균하는 “처음에 수겸이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저 무서워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버텨봐’라는 디렉션을 주셨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해주시는데, 그 한마디에 수겸의 감정이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버텨야 마지막에 전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점점 감정이 올라왔다. 뛰어가면서 호흡도 거칠어지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도 생겼다. 그러면서 힘이 더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수겸이 끝까지 버티며 전하고 싶었던 말은 6화의 의미가 되어 많은 이에게 여운을 남겼다.

“다시는 저 같은 놈 안 나오게 해주세요”

김수겸은 배우의 계산으로 움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 순간에 살아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김균하는 연기를 ‘리액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연습은 하나의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그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면, 그 이후에는 그 사람이 상황에 반응한다. 계획한 것을 하기보다 인물이 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 나오도록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없이 반복한 연습은 무언가를 외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김균하가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다른 사람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벽을 깨는 과정이었다.

▲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꿈꾸는 대로 

김균하의 배우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여섯 살부터 카메라 앞에 섰지만, 어린 배우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지금처럼 갖춰져 있던 시대는 아니었다. 그는 당시를 쉽게 원망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바라봤다.

김균하는 “그 시절 현장은 복합적이었다. 누가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의 관습처럼 이어져 오던 것들이 있었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며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지나온 시간을 원망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김균하는 “초등학교 6학년쯤 부모님께 연기를 그만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이후 4년 동안 공부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었던 기억보다 현장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많이 떠오르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다시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학교 3학년 때 예술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때 만난 선생님들이 인생의 은사”라며 “기본기 훈련만 두 시간을 해도 너무 재미있었다. 길에서도 혼자 연습하고 다녔다”고 웃어 보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그는 혼자 입시를 준비했고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기대했던 성적을 받지 못한 뒤에는 승부욕으로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김균하는 “그때 선생님들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대학 입시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준비했다.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주셨는데, 어린 자존심 때문에 혼자 해내려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학비와 생활비에 대한 부담으로 자퇴를 선택했을 때도, 그의 곁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의 성취보다 사람들의 이름을 먼저 이야기했다. 어려운 시절 손을 내밀어 준 친구, 배우의 길을 도와준 선생님들, 끝까지 믿어준 아내, 자신의 연기를 받아준 김무열, 믿음을 보내준 홍종찬 감독, 그리고 자신이 김수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세계를 만들어 준 수많은 스태프. 그는 “나는 그저 그 모든 것에 반응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김균하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김균하는 “매년 내 안에 화두가 있다. 전에는 ‘존재하는 인간이고 싶다’였다. ‘참교육’을 하면서 그 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며 “여전히 그 마음도 이어지고 있지만, 올해는 어떤 분야에서든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천천히 알려져도 괜찮다. 모르는 얼굴이기에 더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며 “이번에도 머리를 미니까 못 알아봐 주시는 게 오히려 즐거웠다.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계속 새로운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SF장르에 도전하고 싶다는 바람도 더했다. 김균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의 ‘A.I.’를 어릴 때 보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다. 작품은 기록되고 기억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면 배우도 작품을 통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며 “언젠가 나도 그런 작품 속에서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배우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지워 다른 사람을 살아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김균하는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지우며 또 하나의 삶을 완성해 왔다. 그리고 그가 사라질수록 인물은 더욱 선명하게 살아났다.

지금까지 김균하는 얼마나 많은 생을 살아왔을까. 아마 앞으로도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을 지우며, 또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돋보기 TMI.

취미는 아내와 해 뜰 때까지 떠들기

강지호 기자 / 사진= 강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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