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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도시의 그림자라도 되고 싶었던 남자 (‘어느 파리 택배 기사의 48시간’)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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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파리의 어둠 속에서 묵직한 질문을 길어 올린 영화가 있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낭만이 넘치는 도시로 꼽힌다.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등 예술과 역사의 물결을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많아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이 도시도 사람 사는 곳이고, 애환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파리 택배 기사의 48시간'(‘파리 택배 기사’)은 이 도시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영화다. 파리에서의 삶을 꿈꾸며 모욕과 비루한 일상을 견디고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혹은 난민이 되기로 결심했던 청년의 시간을 통해 도시의 하부 시스템을 훑으며 그곳에 형성된 기이한 생태계를 엿보게 했다.

‘파리 택배 기사’엔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는 없다. 불안정한 환경을 딛고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 치는 주인공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의 하루는 칙칙한 색감과 분위기 속에 담겼다. 파리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이 도시의 명성은 오히려 그의 비극을 더 부각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파리 시민들이 누리는 편리함 뒤에 가려진 술레이만의 시간은 암울하다. 배달 주문에 매달리고, 식당이 음식을 주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배달 중 사고가 나면 그의 몸보다 중요한 건 음식의 상태다. 배달 지연과 엉망이 된 음식은 고객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이 때문에 서비스 평점이 낮아지면 생계에 직격탄을 맞는다. 영화는 치열한 배달일지 속에 술레이만이 직면하는 공포와 초조함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술레이만이 마주한 현실은 배달앱 사용이 일상인 우리에게 유독 친숙하게 다가온다. 한국 관객만큼 그의 48시간에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이 있을까. 그런데 ‘파리 택배 기사’에는 특별한 레이어가 하나 더 있다. 술레이만은 난민이며,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심사를 앞두고 있다. 난민 문제를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국가의 관객에게 이에 관한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영화다.

많은 국가에서 난민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사회 혼란을 야기하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부딪히고는 한다. ‘파리 택배 기사’는 어떤 입장에 힘을 실어주려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기니 출신 술레이만은 생존을 위해 망명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심사 기준으로는 체류 자격을 얻을 수 없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브로커를 통해 증명서 등을 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거짓으로 꾸미며 법을 속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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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인공의 설정은 난민 문제를 복합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술레이만의 처지는 분명 외면하기 힘들다. 살기 위해 미치도록 뛰고, 버티는 그의 표정 앞에서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등을 져야 하는 상황은 더 애처롭다. 그렇다고 이 난민을 마냥 받아들일 수도 없다. ‘파리 택배 기사’는 망명 심사를 돕는 어둠의 존재들을 통해 불법적인 사례가 많고, 이런 과정이 체계화되어 있다는 걸 말하며 경계심을 갖게 한다.

영화는 난민을 어떤 존재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한 예로 망명 심사관은 술레이만을 위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의 진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술레이만이 브로커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알지만, 적대심을 갖지 않고 객관적인 정보를 끌어내려고 한다. 술레이만을 따라온 관객도 난민 문제에 어떤 확신을 갖기 어렵다. 관객이 경험한 술레이만은 수많은 난민 중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더 냉철히 생각하면, 관객도 술레이만의 과거와 진심을 모두 확인할 수 없기에 그를 100% 믿기 힘들다.

술레이만 보다 더 눈길이 가는 건 난민을 중심에 둔 경제 구조다. 앞서 언급한 브로커 외에도 신분을 대여해 주는 인물이 있다. 프랑스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술레이만은 배달앱에 가입할 수가 없다. 일을 받기 위해 계정을 빌리고, 그 대가로 배달 수익 일부를 포기한다. 배달 중 만나는 경찰은 이 신분 도용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데, 여기서 이런 암흑 경제가 파리에 활성화되어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영화에서 유독 부각되는 빌런은 이 계정을 빌려주고, 갑질과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였다. 그 역시 변변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술레이만과 권력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도시의 그림자 안에서도 계급이 나뉜다는 점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흥미롭다. 이를 통해 ‘파리 택배 기사’는 경제 구조 안에 가려진 허점과 타인의 비극을 이용하는 인간의 추악함을 동시에 겨냥하며 씁쓸함을 맛보게 했다.

‘파리 택배 기사’는 해답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대신, 난민의 비극을 중심으로 시스템의 구멍과 맹점을 비추며 질문을 던졌다. 또한, 어디에서든 전염병처럼 퍼지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타락한 욕망을 고발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좋은 질문이 있어야 현명한 답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는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주)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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