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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공간 연출을 무너뜨린 산만한 캐릭터…다소 아쉬웠던 ‘살목지’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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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곤지암’의 뒤를 이어 봄을 비명으로 물들일 호러 영화가 관객과 만났다.

‘사망 플래그’라는 단어가 있다. 공포, 스릴러 영화 등에서 인물들이 죽기 전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대사를 뜻하는 말이다. 유독 일행과 따로 행동하거나, “나는 절대 죽지 않아”라고 호언장담하는 대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제는 익숙한 요소이기에 사망 플래그를 볼 때면 기시감을 느껴 긴장감이 떨어진다. 반대로 이를 역으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사망 플래그를 맥거핀처럼 보여주고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도 있다. 그렇다면 사망 플래그가 많이 보였던 이 작품은 어땠을까.

영화 ‘살목지’는 기이한 소문이 들끓는 저수지 살목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호러 영화다. 살목지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PD 수인(김혜윤 분)은 촬영팀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한다. 촬영이 시작되자 연락이 두절된 선배 교식(김준한 분)이 등장하고, 이후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촬영팀은 아비규환에 빠지게 된다.

‘살목지’는 저수지라는 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저수지는 자연이 잘 보존된 공간으로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을 풍긴다. 빽빽히 자리 잡은 나무들은 인물을 가로막고, 때로는 가두며 스산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인간의 목이 매달리 형상으로 디자인된 나무는 불안감을 배로 높인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숲과 속을 알 수 없는 저수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기이한 현상으로 채워진다. 이 속에서 인물들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점점 피폐해져 가고 관객도 충격적인 이미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 공간은 괴담과 오컬트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통신이 먹통이 되는 폐쇄적인 공간, 촬영한 적 없는 곳에서 찍힌 사진, 물속으로 인물들을 유인하는 환상 등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기에 외딴곳에 덩그러니 서있는 돌탑, 쌀을 담은 그릇, 경고를 날리는 정체불명의 노파 등으로 ‘살목지’는 민간신앙적인 요소까지 버무려냈다. 특히, 돌이 부딪히는 소리로 위험을 암시하고 단번에 대기의 분위기를 바꾸는 연출이 압권이다.

최근 호러 영화에서는 첨단 디지털 디바이스를 활용해 귀신을 창의적으로 담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촬영팀이 주인공인 ‘살목지’ 역시 디지털 디바이스로 소름끼치는 순간을 만든다. 경로를 이탈한 채 한 공간을 맴도는 내비게이션, 아무도 없는 곳에 포커스를 맞추는 카메라, 주파수를 통해 귀신의 언어를 들려주는 무전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에 귀신들이 포착되면서 영화의 긴장감이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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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이후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는 점은 ‘살목지’를 더 흥미롭게 한다. 영화는 최후의 생존자, 귀신의 정체, 사건의 전말 등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살목지에서 이성을 잃어가는 캐릭터들이 뱉고, 듣게 되는 대사로 이를 추측하게 한다. 관객이 가장 믿고 따라가는 PD 수인마저도 의문스러운 구석이 많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돌탑을 쌓듯 영화 곳곳에서 퍼즐조각을 찾아 이야기를 쌓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미스터리한 공간과 이를 헤매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2018년 개봉해 신드롬을 일으킨 ‘곤지암’을 생각나게 한다. ‘살목지’도 축축하고 찝찝한 이미지로 불길한 분위기를 구축하고, 다양한 장치로 관객을 압박한다는 점에서 호러 영화로서 매력을 다수 갖춘 작품이다. 이미지와 다양한 장치가 극한의 공포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러나 인물들이 산만했고, 이들이 거슬리는 행동을 하며 극의 이입을 깬다는 게 발목을 잡는다.

‘살목지’의 캐릭터들은 시작부터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는 초반부터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작위적인 연출로 보인다. 호러 영화에서 장애물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들만 모여 있어 영화에 이입하기 쉽지 않다. 이런 비호감 캐릭터들보다 진짜 문제는 대다수의 캐릭터가 사망 플래그를 남발한다는 데 있다. 대다수의 캐릭터가 호러 영화에서 불행을 초래하는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하며 짜증을 유발한다. 이런 태도 탓에 이들이 귀신에게 공격당할 때면 영화가 의도치 않았을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다.

설정과 이미지, 효과 등 ‘살목지’는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호러 영화다. 하지만, 캐릭터 세공에 공을 들이지 않은 탓에 좋은 점이 희석됐고, 그래서 아쉬움을 느껴야 했던 작품이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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