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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코리아’ 김주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그냥 해!'” [RE:인터뷰③]

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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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고운 비단 위에 손수 한 땀 한 땀 놓은 자수 같다.

수를 놓듯이 연기하고, 수를 놓듯이 더 선한 것을 고민하고, 쌓아가는 배우 김주령과 만났다. 눈물이 많은 그는 여리지만 굳센 모습으로, 숙희를 떠올리게 했다.

김주령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8일 개봉한 영화 ‘하나 코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하나 코리아’는 낯선 삶 속에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려는 탈북 여성 혜선(김민하)의 여정을 담은 실화 모티브 아트버스터 작품이다.

한국과 덴마크가 공동 제작한 ‘하나 코리아’는 두 나라의 제작진이 함께 5년여의 시간을 들여, 30여 명의 탈북민을 만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로 활약하며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최성재(샤론 최) 작가가 공동 각본으로 참여하며 기대를 더했다.

극 중 김주령은 낯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혜선의 곁을 지키는 숙희 역을 맡았다. 자신 역시 고향을 떠나온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숙희는 말보다 행동으로 혜선을 살피고 묵묵히 손을 내미는 인물이다.

김주령이 ‘하나 코리아’에 끌린 이유는 극적인 사건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작품의 시선에 있었다.

그는 “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큰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담담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탈북이나 정치적 이념, 편견을 이야기하기보다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따라가는 작품이라는 점이 좋았다”며 “외국인 감독님이었기에 오히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나 역시 그 지점에 끌렸다”고 밝혔다.

덴마크 출신 프레드릭 쇨베르 감독과의 첫 만남 역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김주령은 프레드릭 쇨베르 감독을 “사슴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김주령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선한 마음이 느껴졌다. 단순히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눈을 맞추고 손을 꼭 잡아주는 따뜻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전체 대본 리딩을 위해 배우와 제작진이 처음 한자리에 모인 날, 프레드릭 쇨베르 감독은 작품을 향한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김주령은 “감독님이 이렇게 좋은 배우, 스태프들과 실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오열하셨다”며 “아직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이었고 처음 만난 자리였는데 그렇게 우는 감독님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당시를 회상한 김주령은 “영어로 말씀하시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시는데 작품을 향한 애정과 헌신이 느껴졌다. 정말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감독과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선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컸다.

김주령은 “한국 감독님이 아닌 외국인 감독님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걱정보다는 관심이 생겼고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프레드릭 쇨베르 감독이 김주령을 숙희 역에 캐스팅한 계기는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였다.

김주령은 “처음에는 감독님이 ‘오징어 게임’을 보고 나를 아신 줄 알았는데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인상 깊게 보셨다고 하더라”며 “그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과 다른 면까지 보시고 숙희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주령에게 숙희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깊숙이 눌러 담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스스로를 ‘극F형’, ‘극공감형’이라고 표현한 그에게 감정을 절제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어느 순간에는 숙희로 들어가는 것을 넘어 김주령까지 들어가 버렸다. 숙희가 너무 안쓰럽고 그가 가진 슬픔과 깊은 상처가 느껴지니 감정이 올라올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감정을 더욱 꾹꾹 눌러 담으려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모두 보여주기보다 숙희 안에 담아두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특히 혜선과 숙희의 관계에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비슷한 상처를 품은 두 사람의 연대가 담겼다.

김주령은 “숙희 역시 혜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혜선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을 것 같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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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혜선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숙희 역시 아들을 중국에 두고 온 상황이기 때문에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겹쳤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더욱 혜선을 살피고 곁을 지켜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배우 김민하와 마주한 순간은 김주령에게 깊은 감정을 남겼다. 김주령은 혜선이 한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지금도 그날의 촬영 현장이 눈앞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어느 정도 상대 배우의 연기를 예상하기도 하는데, 민하가 그렇게 아기처럼 엉엉 울 줄 몰랐다”며 “그 순간에는 내가 김주령인지 숙희인지 모를 정도였다. ‘이 친구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지, 어떻게 안아주고 감싸줘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촬영했다”고 회상했다.

이어지는 숙희의 이야기 역시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김주령은 “내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정말 힘들었다.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결국 첫 번째 촬영을 마친 뒤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는 “첫 테이크에서 컷 소리가 나자마자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다가와 손을 잡아주시고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을 조금 더 덜어내보자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촬영했다. 영화에 담긴 장면은 아마 그다음 테이크였을 것”이라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호흡에 실어 보내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어느덧 데뷔 25년을 맞은 김주령에게 배우로서 가장 벅찬 순간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나 박수 속에 있지 않았다. 자신의 연기를 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관객들의 진심 어린 말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김주령은 “해외 팬분들 중에 ‘당신이 있어 줘서 내 삶이 행복하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해줬으면 좋겠다’, ‘오래 배우로 있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조용히 미소 지어보인 그는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내 연기를 보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는 장문의 메시지를 받을 때면 ‘이러려고 내가 연기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진심을 전했다.

“어쩌면 그게 내가 배우를 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고 잔잔하지만 강하게 이야기한 김주령은 “박수를 받는 것보다 그런 진심 어린 이야기가 나에게는 최고의 순간이다. 이 일을 끝까지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긴다. 무겁다기보다는 그저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김주령은 이제 더 넓은 무대에서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그는 “해외 작품에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언어적인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끈기 있게 하는 편이다.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웃었다.

해외 진출의 목표가 반드시 상이나 가시적인 성과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주령은 “상을 주시면 당연히 감사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라며 “다양한 나라에서 그곳의 문화와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좋다”고 말했다.

이어 “언어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지만 나는 그런 과정까지 즐기는 것 같다. 그게 장애물이나 벽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안 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크다. 실패하더라도 먼저 도전하는 성향”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물론 실패 앞에서 언제나 의연한 것은 아니었다. 김주령은 “솔직히 실패하면 한순간에 땅을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고 웃으며 “그래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면 되지’ 하고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배우라는 직업을 넘어 문화와 문화를 잇는 역할에 대한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김주령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문화 행사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경험을 언급하며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비전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배우로서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진 영향력이 좋은 일과 의미 있는 곳에 쓰일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며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면서도 김주령은 결국 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자신의 삶과 배우 생활을 관통하는 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표현했다. 실패가 두렵고 낯선 환경이 겁나더라도 결국 다시 한번 해보는 것. 김주령이 25년 동안 배우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는 이유였다.

영화 ‘하나 코리아’는 지금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강지호 기자 /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하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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