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39명 버스에 77명 탑승→46명 사망… 경서중 ‘수학여행 참사’의 진실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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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양원모 기자] 어쩌면 예견된 사고였다.
1일 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1970년 경서중학교 수학여행 버스 참사를 되짚었다. 생존자들은 56년 만에 카메라 앞에 앉아 그날의 기억을 꺼내놨다.
1970년 10월 14일, 생애 첫 수학여행을 끝낸 경서중 3학년생들은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철길을 건너던 버스가 열차와 부딪혔고, 엔진이 터지면서 차체가 통째로 불길에 휩싸였다. 창가에 덧대 있던 쇠파이프는 구조의 손길마저 가로막았다. 이 사고로 46명의 학생이 꽃 같은 목숨을 잃었다.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일본과 기술 제휴로 만든 사고 버스는 정원을 두 배 가까이 넘긴 채 달렸다. 당시 일부 언론은 인솔 교사가 동승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지만, 생존자들 기억은 달랐다. 늦게 온 학생들을 기다리느라 교사들이 미처 타지 못한 사이 버스가 먼저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건널목도 무방비였다. 기사는 경보음을 듣고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철길로 들어섰다. 주변 건물과 정미소가 시야를 가린 탓에 다가오는 열차가 보이지 않자 서둘러 건너려 한 것. 정미소는 “건설부와 협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방치된 상태였고, 건널목엔 경보기만 있을 뿐 차단기도 관리원도 없었다. 한 생존자는 “운전기사로서 지켜야 할 의무, 철도청에서 지켜야 할 의무만 지켰어도 사고가 안 일어났을 확률이 99%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혼란은 사고 뒤에도 이어졌다. 부모들은 병원으로 옮겨진 일부 학생 이름만 생존자로 방송되면서 자식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날 밤 학교 앞엔 가족, 시민 등 3000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다음날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희생자 모두가 17살 남학생인 데다 시신 훼손이 심해 부모조차 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국과수의 노력 끝에 시신은 모두 가족 품에 안겼고, 사고 이틀 뒤 학교에서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이날 제작진은 사고 이후 소식이 끊겼던 ‘마지막 친구’도 찾아냈다. 사고 직후 붕대로 얼굴을 감싼 채 잠시 나타났다 자취를 감췄던 그는 후유증으로 “중학교 시절 기억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두 차례 피부 이식 수술에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약 4개월을 엎드린 채 버텨야 했다. 그는 “숨진 46명뿐 아니라 그 가족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에 친구들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양원모 기자 /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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