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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탄생→주연 배우 사망 23년 만’에 다시 공개…영원히 기억될 명작 영화

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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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영화 ‘아비정전’을 본 적이 없어도 영화를 사랑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대사다.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는 자신을 발 없는 새에 빗댄다. 평생 땅에 내려앉지 않고 날아다니다 단 한 번 내려오는 순간이 죽을 때라는 새. 자유롭게 들리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1990년 홍콩에서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아비정전’은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아비와 그를 사랑한 수리진(장만옥), 루루(유가령), 그리고 이들의 주변을 스쳐 가는 경찰관(유덕화)과 아비의 친구(장학우)를 그린 작품이다.

3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비정전’은 여전히 왕가위의 영화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꼽힌다. 장국영, 장만옥, 유가령, 유덕화, 장학우에 마지막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양조위까지 지금 보면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배우들이 한 작품에 모였다.

그러나 ‘아비정전’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이들의 전성기를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왕가위가 이후 수십 년 동안 반복하게 되는 시간과 기억, 엇갈린 사랑과 고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장국영 7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인 ‘아비정전’이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오는 9월 12일, 다시 극장을 찾는다.

▲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1분 전”…왕가위의 시간이 시작됐다

‘아비정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보다 시간이다.

아비는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에게 시계를 보라고 한다. 그리고 정확히 1분 동안 서로를 바라본 뒤 그 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그 1분은 수리진에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왕가위 영화에서 시계와 시간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중경삼림’에서는 유통기한이 사랑의 끝을 가리키고, ‘화양연화’에서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 인물들을 붙잡는다. ‘아비정전’은 그 출발점에 가까운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좀처럼 같은 순간에 머물지 못한다는 점이다. 수리진은 아비에게 머물고 싶지만 아비는 떠난다. 루루 역시 아비를 붙잡으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수리진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경찰관 역시 결국 그녀와 다시 만나지 못한다.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할 때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상대가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아비정전’에서 사랑이 계속 어긋나는 이유다.

▲ 장국영이 완성한 ‘발 없는 새’

그 중심에는 고(故) 장국영이 있다.

아비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정작 누군가 자신에게 가까워지면 밀어낸다. 수리진에게 먼저 다가가 사랑을 시작하지만 그가 결혼을 원하자 관계를 끝내고, 루루와 함께하면서도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지 않는다.

그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비는 자신을 키운 양어머니에게 친모의 행방을 집요하게 묻고 결국 필리핀까지 찾아간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곳에서도 그가 원했던 만남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발 없는 새’는 단순한 자유의 상징으로 보기 어렵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아비의 태도 뒤에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해본 적 없는 사람의 결핍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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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먼저 떠나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지 않고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등을 돌린다. 그러나 그렇게 누구에게도 머물지 않은 끝에 남은 것은 자유가 아닌 고독이다.

장국영은 그런 아비를 단순한 바람둥이로 만들지 않았다. 능청스럽고 오만한 얼굴과 그 이면에 자리한 불안을 동시에 보여주며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을 끝내 이해하게 만든다. 장국영이 아닌 아비를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연기로 장국영은 1991년 제10회 홍콩금상장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아비정전’ 역시 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까지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원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은 장국영은 지난 2003년 향년 46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어느덧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비정전’의 아비는 장국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생 캐릭터이자, 그를 그리워하는 관객들이 다시 찾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 흥행보다 오래 남았다…시작된 ‘왕가위’

‘아비정전’은 왕가위에게도 결정적인 작품이다.

그의 전작 ‘열혈남아’에 홍콩 누아르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면 ‘아비정전’에서는 이후 우리가 ‘왕가위답다’고 부르게 되는 요소들이 선명해졌다. 인물보다 오래 남는 공간, 시간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대사, 만나지만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 명확한 결론 대신 감정을 남기는 방식이다.

특히 ‘아비정전’은 왕가위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처음 함께한 작품이다. 습기와 열기가 느껴지는 1960년대 홍콩의 공간은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독특한 색과 질감을 얻었고, 이 협업은 이후 왕가위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을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영화는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는 대신 또 다른 인물을 꺼내놓는다.

작품 막바지 좁은 방 안에서 한 남자가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를 빗고 외출을 준비한다. 앞선 이야기와 별다른 접점도, 친절한 설명도 없다. 그 남자를 연기한 배우가 양조위다. 당초 후속작을 염두에 둔 장면이었지만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양조위의 등장은 영화사에 남은 기묘한 엔딩이 됐다.

대신 ‘아비정전’에서 시작된 정서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수리진이라는 이름과 1960년대 홍콩,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집착은 ‘화양연화’와 ‘2046’까지 이어지며 왕가위만의 세계를 확장했다.

개봉 이듬해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을 휩쓴 ‘아비정전’은 이후에도 꾸준히 재평가됐다. 홍콩국제영화제 역시 이 작품을 당대의 결정적인 작품이자 이후 세대의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35년이 넘게 지난 지금 ‘아비정전’이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에 실패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왕가위는 실패한 사랑보다 그 사랑이 지나간 뒤 사람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바라봤다.

아비는 끝까지 자신이 ‘발 없는 새’라고 믿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질문은 오히려 반대로 향한다. 정말 그에게 발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워 스스로 내려앉지 않았던 것인지.

‘아비정전’이 수십 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그 질문에 아직도 명확한 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돌아온 장국영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왕가위 감독의 시작을 목도할 수 있는 영화 ‘아비정전 4K 리마스터링’은 오는 9월 12일 다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강지호 기자 / 사진=영화 ‘아비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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