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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조은지 기자] 가수 휘성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가 가요계에 남겼던 흔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어제(10일) 휘성은 오후 6시 29분쯤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서울 광진경찰서는 휘성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휘성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연예계 활동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휘성의 연예계 역사는 댄스팀에서 시작됐다. 그는 1997년부터 약 2년간 댄스팀 ‘ING’에 소속돼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의 백댄서로 활동했다. 그 후 베이비복스의 소속사 DR 뮤직에서 론칭한 ‘A4’라는 4인조 그룹의 멤버로 잠시 활동했다.
이후 휘성은 나우누리의 흑인 음악 동호회 ‘SNP’에서 활동하며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당시 그는 ‘휘스코’라는 이름으로 래퍼 버벌진트, 4WD, 데프콘, 피타입, 정인 등과 같이 활동하며 흑인 음악 장르의 부흥에 일조했다.
‘SNP’ 활동 후, 휘성은 2002년 정규 1집 ‘Like A Movie’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에 나섰다. 당시 타이틀 곡 ‘안 되나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주목받았다. 연이어 발매한 휘성의 2집 ‘It’s Real’ 또한 지상파에서 6주 연속 1위를 거머쥐며 골든디스크 본상을 받는 쾌거를 누렸다.
이외에도 ‘사랑은 맛있다’, ‘결혼까지 생각했어’, ‘가슴 시린 이야기’ 등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승승장구했다. 또, 휘성은 작사가로서도 인정받았다. 그는 윤하의 ‘비밀번호 486’, 이효리의 ‘헤이 미스터 빅’, 트와이스의 ‘댄스 더 나잇 어웨이’ 등을 작사하며 음악적 감각과 실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휘성은 지난 2019년, 3개월간 12차례에 걸친 향정신성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 매수와 11차례의 상습 투약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휘성은 결백을 주장했으나, 이듬해 화장실에서 약물을 투여한 뒤 쓰러진 채 발견돼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마약 투여 사건 이후로 자숙했던 휘성은 오는 15일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일 그의 비보가 전해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 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 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은지 기자 jej2@tvreport.co.kr / 사진= 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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