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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민세윤 기자]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과거 방송계를 주름잡던 전성기 시절을 지나 돌연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던 가슴 아픈 비화를 털어놓았다.

최근 채널 ‘특종세상’에는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가수 이용복의 깊이 있는 인생 스토리와 근황이 업로드됐다. 공개된 영상 속 그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카페와 펜션을 운영하며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방송 3사의 신인 가수상과 10대 가수상 등을 휩쓸었던 이용복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그때 당시 2만 원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월급이었는데, 내 극장 첫 개런티가 하루 2만 원이었다”며 상상을 초월했던 전성기 시절의 수입을 밝혔다. 이어 “6개월에 딱 하루 쉬었다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로 바빴고, 어디를 가든 여학생들이 줄줄 따라다녔다”며 극장 쇼 무대와 방송, 영화계까지 장악했던 화려한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던 그의 활발한 행보는 1978년 앨범을 끝으로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던 그가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 배경에는 당시 독재 정권 시절 권력자의 냉혹한 한마디가 있었다.

이용복은 외면당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 “당시 권력을 가지신 분이 ‘텔레비전을 보고 즐거워야 할 안방에 왜 저런 사람들이 나와서 청승스럽게 만드느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고위층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이에 압박을 느낀 “방송국 측에서 나의 출연을 조금씩 기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며 시대의 어둠에 가로막혀 무대를 떠나야 했던 쓸쓸한 비하인드를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향한 그의 오랜 집념과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이용복은 색소폰, 플루트, 기타, 베이스 기타, 우쿨렐레 등 수많은 악기를 오직 독학으로 마스터하며 여전히 음악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는 “내가 무언가를 하나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이 엄청나다”며 “담을 쌓고 철근을 넣고 시멘트를 발라 건물을 짓듯이, 나 같은 경우는 음악이라는 세계 자체를 스스로 창조해 낸다는 성취감이 대단하다”고 설명해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부조리한 권력의 잣대로 인해 안방극장에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지만, 음악이라는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리며 장애의 한계를 멋지게 극복해 낸 이용복.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창조의 기쁨을 노래하는 그의 아름다운 거장 바이브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그 시절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막았다니 정말 야만의 시대였다’, ‘교장 선생님 월급을 하루 만에 벌었다니 인기가 정말 대단했네’, ‘독학으로 그 많은 악기를 다 다루시다니 천재가 분명하다’, ‘펜션이랑 카페 하시는 모습 너무 멋지고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민세윤 기자 / 사진=채널 ‘특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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