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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 하수나 기자] 의문으로 가득 찬 한 청년의 죽음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선 ‘기묘한 증발, 그리고 검은 그림자’ 편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에선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버린 한 청년의 사연으로 서두를 열었다. 1992년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형 박영순 씨는 동생 태순 씨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은 실종된 태순 씨를 찾아 나섰지만 그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그동안 동생이 형의 이름을 비롯해 여러 가명을 사용했으며 실종되기 직전, 친구들에게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
9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태순 씨가 이미 열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9년 전 실종된 당일, 시흥역에서 달리는 기차에 치여 두뇌파열로 사망했었다는 것. 그동안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돼 소식을 알 수 없었다는 것에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졌다.
그러나 “열차사고가 났으면 당연히 접수 됐을텐데 왜 그를 찾지 못했을까? 왜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 됐을까?” “왜 집이 있는 역이 아닌 시흥역에서 내렸을까?” “왜 그날 밤 기차 승강장으로 간걸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또한 당시 사망 사고를 목격했을 열차의 부기관사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 9년 전 지문조회로 신분을 밝힐 수 없었는데 9년 뒤에는 지문으로 하루 만에 신분이 확인됐다는 점, 당시 사고 현장에 그의 가방이 보이지 않았던 점도 의문을 더했다.
사망한 박태순 씨는 노동운동에 진심이었던 대학생이었다고. 당시는 노동 운동자를 빨갱이로 낙인찍던 시대였기에 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들은 학력을 낮추고 가명을 써서 취업을 하기도 했다는 것. 그의 친구들은 박태순 씨가 기무사 요원들의 사찰을 받기도 하는 등 당시 삼엄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의문사위 조사에서 당시 박태순을 사찰하던 기무사 요원을 조사했지만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 못했고 첫 번째 의문사위 조사는 진상규명 불능, 두 번째 조사도 불능, 세 번째 조사도 불능으로 나오며 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됐다. 사랑하는 동생이자 아들, 소중한 친구를 잃은 가족들과 친구들은 여전히 아픔을 안고 살아오고 있었고 그 모습에 이날 출연한 이윤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방송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난해 3월 다시 네 번째 진상규명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친구들은 박태순 씨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는 것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좋은 친구였고 훌륭한 친구였기 때문에 그 길에 뭔가를 더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리운 친구를 향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하수나 기자 mongz@tvreport.co.kr/ 사진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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