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얼굴이 왜 저래?’…투컷이 끼어든 로맨스 명작의 세계, ‘미장센’ 속 그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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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사랑은 끝나도 명장면은 남는다. 그런데 그 명장면의 주인공이 전부 투컷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케이트 윈슬렛인 줄 알았는데 투컷이고, 양조위인 줄 알았는데 또 투컷이다. 라이언 고슬링을 기다렸더니 이번에도 투컷이 나타난다. 세계적인 배우들이 수십 년에 걸쳐 완성한 로맨스의 순간들을 에픽하이 투컷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에서 모두 소화했다. 그것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에픽하이와 다비치가 지난 13일 공개한 첫 컬래버레이션 싱글 ‘미장센’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발매 직후 인기 뮤직비디오 1위와 주요 음원 차트 실시간 2위에 오른 가운데, 영화 속 명장면을 재현한 뮤직비디오도 화제를 모았다.
‘미장센’ 뮤직비디오에는 ‘500일의 썸머’, ‘이터널 선샤인’, ‘화양연화’, ‘라라랜드’가 등장한다. 에픽하이와 다비치 멤버들은 영화 속 인물로 변신해 의상과 구도, 분위기까지 높은 싱크로율로 재현했다. 특히 투컷의 활약이 압도적이다. 네 편의 영화, 네 명의 배우, 성별도 국적도 장르도 넘나드는 그야말로 투컷의 멀티버스다.
팬들 역시 “저 네 사람이 다 잊고 싶어 하는 게 김정식(투컷)이냐”, “오백일의 투컷, 이터널 컷샤인, 투양연화, 라투컷드”, “투컷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여자 주인공 정체에 너무 충격받아서 입이 안 다물어진다”, “여자 주인공 얼굴이 왜 저러냐” 등 유쾌한 반응을 쏟아냈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원작 영화들이 남긴 사랑과 이별의 감정도 자리한다. 노랫말과 함께 다시 소환된 네 편의 명작을 되짚어봤다.


▲ ‘500일의 썸머’…운명인 줄 알았던 사랑, 엘리베이터에 투컷이 탔다
타블로의 랩이 시작되면 등장하는 영화는 ‘500일의 썸머’다. 타블로는 톰(조셉 고든 레빗), 투컷은 썸머(주이 디샤넬)로 변신해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재현했다.
지난 2009년 개봉한 마크 웹 감독의 ‘500일의 썸머’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과 사랑에 대한 확신을 경계하는 썸머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된다. 톰이 듣고 있던 음악을 알아본 썸머가 먼저 말을 건네면서 평범했던 출근길은 특별한 순간으로 바뀐다. 그러나 톰에게 운명이었던 만남은 썸머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500일을 시간순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행복했던 순간과 이별 이후의 시간을 교차하며 사랑의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드러낸다.
‘미장센’에서 타블로는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화면에는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첫 만남이 등장한다. 사랑의 시작에 이별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을 겹친 셈이다.
투컷의 등장에 웃다가도 영화의 결말을 떠올리면 묘한 씁쓸함이 남는다. 어쩌면 ‘500일의 썸머’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자신만의 톰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썸머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기억은 지워도 투컷은 잊히지 않는다
미쓰라의 랩이 시작되면 이번에는 ‘이터널 선샤인’이 등장한다. 미쓰라는 조엘(짐 캐리), 투컷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으로 변신해 얼어붙은 호수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명장면을 재현했다.
지난 2004년 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은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독특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조엘은 연인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을 삭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처받은 그는 자신 역시 그녀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기억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사랑했던 순간들을 다시 마주하며 뒤늦게 그 시간을 붙잡으려 한다.
얼어붙은 호수 위에 누운 두 사람의 모습은 영화의 대표적인 명장면이다. 차가운 얼음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위태로운 공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장 따뜻한 장소가 된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이 장면의 낭만적인 구도를 살렸다. 다만 케이트 윈슬렛의 자리를 투컷이 대신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기억을 지우는 영화의 명장면을 재현했지만, 투컷의 모습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미장센’에서 미쓰라는 조각난 감정과 흐려진 기억을 이야기한다. 함께했던 시간을 지우려는 마음은 조엘이 선택한 기억 삭제와 닮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기억을 없애는 것이 곧 사랑을 없애는 일인지 묻는다. 아팠던 순간을 지우면 행복했던 시간까지 함께 사라진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이 아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 ‘화양연화’…양조위 대신 투컷, 말 못 할 사랑에 웃음이 끼어들었다
강민경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순간, 뮤직비디오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로 넘어간다. 강민경은 수리첸(장만옥), 투컷은 차우(양조위)로 변신해 비 내리는 거리의 벽을 배경으로 한 장면을 재현했다.
지난 2000년 개봉한 ‘화양연화’는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서로에게 끌리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웃으로 만난 차우와 수리첸은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며 가까워지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은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영화는 사랑을 직접적인 고백보다 시선과 침묵으로 보여준다. 좁은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 빗속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시간, 말없이 마주 보는 눈빛에 두 사람의 감정이 쌓인다.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분위기를 오마주했다. 앞선 두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았던 투컷이 이번에는 양조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원작에서는 눈빛 하나가 수많은 감정을 설명했다면, 뮤직비디오에서는 투컷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선을 빼앗는다.
그러나 ‘화양연화’가 남긴 감정은 여전히 묵직하다. 영화의 제목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하지만, 두 사람에게 그 시절은 동시에 가장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미장센’에서 강민경이 노래하는 떠남과 기억의 삭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화양연화’의 시간과 겹쳐진다.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아름답고,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오래 기억되는 사랑이다.


▲ ‘라라랜드’…라이언 고슬링은 없지만 투컷이 있다
이해리의 목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영화는 ‘라라랜드’다. 이해리는 미아(엠마 스톤), 투컷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으로 변신해 해 질 무렵 언덕에서 춤추는 명장면을 재현했다.
지난 2016년 개봉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는 배우를 꿈꾸는 미아와 재즈 음악가 세바스찬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영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에 빠진다. 특히 노을이 지는 언덕에서 함께 춤추는 장면은 영화의 대표적인 명장면으로 꼽힌다. 보랏빛 하늘과 노란 원피스, 경쾌한 음악이 어우러지며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을 담아낸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낭만적인 순간을 이해리와 투컷이 재현했다. 케이트 윈슬렛과 양조위를 거쳐 이번에는 라이언 고슬링이 된 투컷. 원작의 분위기를 진지하게 따라 하는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더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그 낭만적인 춤과는 다르다.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이루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우연히 다시 만난 순간, 영화는 두 사람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상상 속 장면으로 보여준다.
‘미장센’에서 이해리는 잊혀질 준비를 하겠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화면에는 사랑이 막 시작되던 ‘라라랜드’의 명장면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게 잊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겹쳐지는 것이다.
‘라라랜드’는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사랑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함께하지 못했더라도 서로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500일의 썸머’의 주이 디샤넬부터 ‘이터널 선샤인’의 케이트 윈슬렛, ‘화양연화’의 양조위,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국가의 배우들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에서 투컷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분명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이지만 원작을 향한 애정도 엿보인다. 의상과 구도,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재현한 높은 싱크로율은 명작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반가움을 안긴다.
네 편의 영화는 모두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결말은 다르다. ‘500일의 썸머’는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이터널 선샤인’은 지울 수 없는 기억을, ‘화양연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마음을, ‘라라랜드’는 사랑과 꿈 사이에서 선택한 서로 다른 미래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웃다가 다시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다. 투컷의 변신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가 재현한 장면 뒤에는 여전히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명작들이 있다.
사랑은 끝나도 장면은 남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장면 속에 투컷이 남았다. 이제 ‘이터널 선샤인’의 얼음 호수나 ‘라라랜드’의 노을을 다시 볼 때마다, 원작 배우들 사이로 투컷의 얼굴이 잠깐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강지호 기자 / 사진= 에픽하이·다비치 ‘미장센’, 영화 ‘500일의 썸머’, ‘이터널 선샤인’, ‘화양연화’, ‘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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