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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천만잭팟] “할머니 관객들의 좀비수다, 내가 원한 풍경”[인터뷰] ③

김수정 기자 조회수  

[TV리포트=김수정 기자] ‘부산행’의 성공을 예견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입장벽 높은 좀비라는 소재를 애니메이션 출신 감독이 실사영화로 만든다고 하니, 기대보다 우려가 큰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이러한 우려를 완벽히 기우로 바꾸며 상반기 극장가를 ‘부산행’ 신드롬으로 달궜다. 칸영화제에서 쏟아진 호평은 예고에 불과했다. 연일 흥행 신기록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 첫 천만 영화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부산행’의 흥행이 무엇보다 의미 깊은 건 한국 상업영화 장르를 확장시킨 데 있다. 경찰, 사이코패스, 조폭이 난무하는 충무로에 느닷없이 좀비를 등장시킨 연상호 감독. 다음은 그와 만나 ‘부산행’에 대해 나눈 일문일답.

-‘부산행’은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 출발한 영화다.

처음엔 NEW 영화부문 장경익 대표가 ‘서울역’을 실사영화로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같은 이야길 두 번 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서울역’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는 건 어떨까 싶어 시작한 게 ‘부산행’이다.

-첫 실사영화다. 캐릭터의 연기를 직접 디자인하다가 살아 있는 배우의 연기를 디렉션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

애니메이션 작업할 때도 배우들의 목소리를 먼저 녹음한 뒤 작화 작업에 들어갔다. 때문에 배우들의 습관, 연기를 그대로 애니메이션에 녹이기도 했다. 그때의 작업 스타일 덕분인지 실사영화라고 해서 특별히 어렵진 않았다.

-좀비라는 생소한 소재에 비해 캐릭터들은 다소 전형적이다.

좀비가 창궐한 아비규환 열차라는 설정 자체가 너무 특수하잖아. 그 특수한 상황에 특수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건 영화적으로 크게 매력적이지 앟다고 봤다. 특수한 상황에 아주 보편적인 인물들이 뛰어드는 이야기가 ‘부산행’의 영화적 재난 상황을 더욱 돋보이게 할 거라고 봤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석우(공유)를 펀드매니저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처음엔 막연하게 회사원이었다. 성장 중심의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뭘까 고민했다. 펀드매니저는 기대심리를 재화로 바꾸는 직업이잖아. 물질 사회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펀드매니저로 설정했지.

-재난 상황에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한 직업이라는 점에서도 탁월한 설정이었다.

맞다. 주인공이 가진 힘을 무력화 시키는 게 중요했다. 석우는 남들보다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는데, 결국엔 그 정보가 아무 쓸데 없는 게 되잖아. 그때 석우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이 우리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건 좀비 영화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좀비 재난 상황에서 무력해지는 것들.

-신파에 대한 지적은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 같은데

다 죽어야 하는 것 아니냔 사람들도 있던데.(웃음) ‘부산행’은 우리 영화가 생애 첫 좀비영화인 관객들을 위해 만든 영화다. ‘새벽의 저주’가 어떻고, ‘워킹데드’가 어떻고, 좀비물 마니아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좀비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들이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지점은 감정신이었다. 재밌는 게, 조조로 ‘부산행’을 보러 온 할머니 두 분이서 ‘쟤가 좀비한테 물렸어?’ ‘아직 안 물렸어?’라며 좀비 얘기를 나누시더라. 내가 이 영화로 원했던 풍경 중 하나다.

-왜 그런 풍경을 원했나

좀비가 대중적인 소재는 아니잖아. 좀비 장르 자체를 아주 대중적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부산행’ 같은 변주는 변주도 아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좀비가 연애(‘웜바디스’)도 하는 마당에.(웃음)

-좀비 장르를 확장시킬 필요성은 어디서 느꼈나

예전엔 한국에서 스릴러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코미디와 멜로가 중심인 시절이 있었다고. 그러다 ‘살인의 추억’처럼 잘 만든 스릴러가 나오며 어느 순간 스릴러가 보편적인 장르가 됐다.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젊은 친구들의 시나리오 폭이 굉장히 좁다. 경찰, 조폭, 사이코패스, 스릴러로 한정돼 있다. 남들이 절대 안 할 것 같은, 성공하기 힘들 것 같은 소재로 잘 되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차기작에서도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 이어질까

아마도. ‘부산행’ 같은 액션 영화는 아닐 것 같다. 블랙 코미디나 멜로처럼 한국에서 흥행이 잘 안 되는 장르에 도전할 생각이다.

-‘돼지의 왕’, ‘사이비’의 팬들이 ‘연상호가 변했다’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으하하. 칸영화제에서 그 난리가 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연상호 회고전이란 걸 했다. 난 정말 기대 많이 했지. 웬걸, 관객 8명이 전부였다.(좌중폭소) 그런데 연상호가 변했다니! ‘서울역’ 개봉 때 팬들의 응집력을 기대해 보겠다.(웃음)

-할리우드 러브콜도 뜨겁다.

일단 ‘부산행’ 리메이크는 계속 논의 중이고, 할리우드 진출은 얼마 전 메이저 스튜디오 본사 사람이 찾아와 만나긴 했다. 구체적인 얘길 하기엔 애매한 단계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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