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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도현 기자] 미국의 코미디 배우 더들리 무어가 세상을 떠난 지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2002년 3월 27일 미국 뉴저지 플레인필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66세.
무어의 사인은 최근 몇 년간 앓아온 진행성 뇌질환(파킨슨 병)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밝혀졌다. 그는 사망하기 3년 전 자신이 폐렴에 걸린 사실을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고인은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뛰어났던 수재였다. 이후 그는 1958년 학사 학위를 취득한 직후 재즈 피아니스트로 순회 공연을 다니며 대중들과 소통했다. 이후 1960년 코미디에 눈을 떴던 무어는 피터 쿡 , 조너선 밀러 , 앨런 베넷을 만나 풍자 연극 ‘더 프린지’를 기획했고 해당 작품은 브로드웨이를 휩쓸며 토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극을 통해 여러 연출 감독들의 눈에 들었던 무어는 1978년 영화 ‘파울플레이’에 섭외돼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이후 그는 두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더욱 명성을 얻었는데, ’10’에서는 완벽한 여자를 찾는 뮤지션 역을, ‘아서’에서는 사랑스러운 술꾼 백만장자 역을 완벽히 해내며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그는 평범한 외모와 162㎝의 단신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매력을 과시해 할리우드 섹스 심벌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여러 작품을 흥행시키며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던 그는 생애 후반기에 접어들자, 음악 활동에 전념했다. 다만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불우했던 삶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수지 켄델 등 네 명의 여인과 결혼했지만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거듭했다. 힘든 환경 속에서 활동을 지속하던 그는 결국 진행성 핵상마비라는 희귀 신경 질환으로 건강이 악화돼 활동을 중단했다.
고인 사후 영화평론가 배리 노먼은 “그는 자기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떠났다. 삶은 그에게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김도현 기자 / 사진= ITV ‘The South Bank Show’, NBC ‘Carson Tonight Show’, 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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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도현아..
도현아 먹고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