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끝과 시작을 동시에 만났던 영화적인 순간…그리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던 ‘바람불어 좋은 날’ [31th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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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故 안성기와 함께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15일, 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올해부터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의 ‘A-리스트 영화제’로 위상이 달라진 부산국제영화제는 11년 만에 2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많은 프로그램 중 유독 눈이 갔던 건 故 안성기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시절, 안성기’였다. 생전 안성기가 특별기획전을 제안받고 직접 선정한 여섯 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뜻은 프로그램이었다.
영화제 기간 중 ‘바람불어 좋은 날’을 관람했다. 극장을 꽉 채운 관객들의 열기를 보며 여전히 많은 이가 안성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70년대 후반에 촬영된 ‘바람불어 좋은 날’은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을 배경으로 성공을 꿈꾸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중국집 배달원 덕배(안성기 분), 이발소에서 일하는 춘식(이영호 분), 여관 종업원 길남(김성찬 분)은 호기롭게 서울살이에 도전하지만 계층의 벽과 사회의 쓴 맛을 느끼고 씁쓸하게 퇴장한다.
‘바람불어 좋은 날’은 도시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시민들,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없는 청춘의 초상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천박한 자본가들 앞에서 꿈이 붕괴되는 비루한 청년들의 삶이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발전하는 도시와 달리 퇴보하는 청년들의 행보는 성공과 행복이 모두에게 보장된 것이 아니라 말한다. 계층의 갈등이 커지고 있던 순간을 포착해 근대화의 그림자를 부각했다.

故 안성기에게도 ‘바람불어 좋은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5살 때부터 연기를 했던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연기를 그만뒀다가 이 영화를 통해 10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서울의 과거와 함께 청년 안성기의 출발점을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 흥미로운 영화다. 이번 관람에서는 서사보다는 그의 표정 하나하나에 더 집중했고, 중년의 신사로 각인된 모습과는 다른 이미지 앞에서 반가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꼈다.
올해 1월, 우리 곁을 갑작스레 떠난 배우가 스크린 안에서 청년으로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모습은 묘한 감정을 맛보게 한다. 기록하는 매체인 영화의 힘을 새삼 느꼈고, 필름 속에서는 언제든지 그와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한 배우의 시대가 저문 시기에 그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건 영화만이 만들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 면에서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상영되던 그때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었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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