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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최민준 기자] *해당 리뷰 기사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원전 12세기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되묻는다. 전쟁에서 이긴 사람은 정말 승자인가. 상대를 꺾기 위해 선택한 지혜는 언제부터 죄가 되는가. 무엇보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은 끝내 평화를 찾을 수 있는가.
지난 5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맷 데이먼이 트로이 전쟁을 끝낸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를 연기하고, 앤 해서웨이는 아내 페넬로페, 톰 홀랜드는 아들 텔레마코스로 출연한다. 젠데이아가 맡은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이끄는 중요한 존재로 등장한다.
익숙한 영웅의 귀환담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승리의 영광보다 그 뒤에 남겨진 죄책감이다. 전쟁을 끝낸 지략가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더 바다 위에서 보내며 자신이 선택했던 전쟁과 마주한다.


▲ 승리를 위해 버린 것들, 정말 필요한 것이었을까
오디세우스의 대표적인 지략은 트로이의 목마다. 그리스군은 선물처럼 꾸민 거대한 목마를 트로이 성 안으로 들여보냈고, 내부에 숨어 있던 병사들은 밤이 되자 도시를 공격했다. 전쟁을 끝낸 결정적 전략이었지만 영화는 이를 단순한 영웅적 지혜로 바라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크세니아’는 낯선 손님을 맞이하고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환대의 규범이었다. 놀란은 이 크세니아를 ‘제우스의 법’으로 끌고 들어왔다.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선물로 받아들였지만 오디세우스는 그 믿음을 이용했다. 상대가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속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 순간 오디세우스의 지혜는 다른 얼굴을 갖는다. 승리를 가능하게 한 전략인 동시에 인간 사이의 신뢰를 깨뜨린, ‘제우스의 법’을 어긴 죄인 것이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가 이후 겪는 긴 귀환은 그래서 단순한 모험이 아니다. 그는 괴물과 마녀, 바다의 위협을 지나며 동료들을 하나둘 잃는다. 전쟁에서 타인을 침략했던 인간이 이번에는 낯선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약자가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뒤집히는 순간, 전쟁의 승패가 갖는 의미도 달라진다. 트로이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한 영광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 대화가 끊긴 세계에 승자란 없다
이 지점에서 ‘오디세이’는 약 2,900년 전의 신화를 오늘의 현실로 끌어온다. 전쟁이 시작될 때는 언제나 명분이 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더 큰 위협을 막기 위해서, 국가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남는 것은 결국 죽음과 폐허, 그리고 서로를 향한 또 다른 증오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종전을 말하면서도 다시 폭격이 이어지고,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누가 옳은지를 먼저 증명하려 한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 의심과 공포가 들어서고, 그렇게 쌓인 감정은 결국 또 다른 충돌의 이유가 된다.
‘오디세이’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그곳에 있다. 상대를 이기는 것이 정말 문제의 해결일까. 오디세우스는 누구보다 영리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혜가 만들어낸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동료를 잃었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길어졌다.
결국 그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마지막 장벽은 바다가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귀환’은 단순히 집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 무엇을 잃었는지, 나를 믿었던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돌아보는 과정이다.


기원전 12세기의 인간도 지금의 인간처럼 싸웠고, 속였고, 승리하려 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기의 모양과 전쟁의 규모뿐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갈등을 대하는 방식과 승리를 위해 상대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모습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오디세이’는 결국 오디세우스에게 묻는다.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낸 것은 정말 지혜였는가. 그리고 그렇게 얻은 승리를 과연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약 2,9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쉽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어쩌면 전쟁을 시작한 순간 진정한 승자 따윈 없던 것일지도.
최민준 기자 / 사진= 영화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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