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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기묘한 공간을 무대로 관객의 심리를 압박하는 호러 영화가 관객과 만났다.
다양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스파이더맨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직장에서든 친구들 앞에서든 우리의 내면을 그대로 노출하는 건 드물고, 또 쉽지 않은 일이다. 대개는 사회적 위치에 걸맞은, 혹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가면을 쓰고서 나라는 역할을 연기한다. 너무도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이도 그 가면 속에 전혀 다른 면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기에 인간관계는 어렵기만 하다.
‘키퍼’는 연인 맬컴(로시프 서덜랜드 분)의 외딴 오두막에 도착한 리즈(타티아나 마슬라니 분)가 섬뜩한 환영을 목격하고, 믿을 수 없는 사건에 얽히게 되는 이야기다. 자상하고 다정한 맬컴과 달리 서늘한 오두막과 괴짜 같은 맬컴의 사촌 탓에 리즈는 겁을 먹고, 정서적으로 점점 피폐해진다. 이후 관객은 혼란스러운 리즈의 시선으로 기괴한 현상과 맬컴의 가면 속 진짜 얼굴을 목격하며 공포를 체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공간 자체가 만드는 불길한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우선, 인적이 드문 숲부터 극도의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우거진 나무가 빛을 차단하는 탓에 숲 전체가 스산한 향을 풍긴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오두막은 앤티크함이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외부와 완벽히 차단돼 감옥처럼 갑갑함을 느끼게 했다. 더구나 리즈에게는 낯선 곳이기에 어둠에 휩싸인 요소는 모두 공포의 동력이 된다. 이 압박감 속에 리즈는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연인 맬컴마저 의심하게 되며 점점 더 궁지에 몰리게 된다.

‘키퍼’는 이를 적극 활용해 심리 스릴러를 구축했다. 리즈가 환각과 현실을 오가며 섬뜩한 존재를 마주하고, 오두막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감이 증폭된다. 이 영화는 호러물에서 익숙한 점프 스퀘어를 지양하고, 음침한 공간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로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제작진은 무서운 상황을 대놓고 보여주는 연출을 택했는데, 그 지점에서 이 장르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관객에게만 보이는 미지의 존재가 리즈 곁을 기웃거리며 불길한 사건을 예고하고, 이 장면에서 영화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영화엔 리즈 외에도 숨겨진 희생자가 다수 등장하는데, 이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키퍼’의 메가폰을 잡은 오스굿 퍼킨스 감독은 본인이 백인 남성으로서 특권을 가진 존재였다면서, 가부장제를 비롯해 과거의 남성적 관습을 성찰하려 했다고 연출의도를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키퍼’는 긴 역사를 관통해 폭력에 노출되었던 여성들의 한과 억압당한 시간을 조명하려 했던 작품이다. 맬컴의 오두막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비극을 숨기고 있었고, 후반부에 이 관계를 역전시키며 통쾌함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오스굿 퍼킨스 감독의 의도가 영화의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인상은 받기 어려웠다. 주인공 맬컴이 백인 남성으로 설정돼 있으나 ‘키퍼’에는 그의 서사가 파편적이고 짧게 제시돼 있다. 플래시백을 통해 잠깐 등장하는 과거 맬컴 형제의 행적을 가부장제와 백인 남성의 악습을 연결하는 건 비약으로 보인다. 때문에 영화 안에서는 오스굿 퍼킨스의 메시지를 읽기 어려웠고, 빌런 세팅도 탄탄하지 못한 탓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을 때를 비롯해 맬컴이 처벌당할 때의 쾌감도 크지 않았다.

‘키퍼’는 초반부 기묘한 공간을 통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심리 스릴러로서 재미를 충실히 쌓아갔다. 그러나 캐릭터를 비롯해 서사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장르적 재미는 물론, 감독이 의도했던 메시지까지 빛이 바랬다. 호러적 장치를 배제하는 연출을 택했기에 임팩트 있는 순간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만으로는 매력적인 호러 영화가 될 수 없었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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