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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술 아저씨가 그랬어, ‘호프’는 잘될 거라고 [씨네:리포트]

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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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집요한 나홍진 감독이 고약한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숨을 고를 틈조차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통쾌함을 기대한 자리에는 의문을 남기고, 끈덕지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신 쉴 틈 없는 액션으로 밀어붙인다. 

날카로운 긴장감과 꼬리를 무는 의문, 불쑥 공기를 뒤집는 블랙 코미디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가 여전히 특별한 체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영화 ‘호프'(감독 나홍진·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호프’는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마을 청년들로부터 호랑이 출현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믿기 어려운 존재와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추격자’, ‘황해’, ‘곡성’ 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네 번째 장편 영화 ‘호프’는,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일찌감치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규모,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던 SF 장르, 국내외 배우들이 총출동한 화려한 라인업은 물론 손익분기점까지 대중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국 영화의 희망’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는가 하면, 칸영화제 공개 이후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로도 주목받았다. 여기에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상황까지 겹치며 ‘호프’는 개봉 전부터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호프’는 이야기가 없는 영화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이야기를 대사와 설명으로 풀어내지 않는 영화에 가깝다. 나홍진 감독은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 관객에게 전달하는 대신 거대한 추격전과 액션 속에 밀어 넣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움직임과 충돌이 곧 ‘호프’의 이야기가 된다. 그 잔상이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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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호포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마을에 나타난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관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건네지 않은 채 낯선 사건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범석과 성기(조인성), 순애(정호연)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재난과 맞닥뜨린다. 전반부의 중심에는 범석이 있다. 관객은 그의 시선을 따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쫓는다.

곰인지 호랑이인지, 혹은 전혀 다른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 범석은 실체조차 확인하지 못한 존재를 향해 달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추격의 방향이 뒤집힌다. 미지의 존재를 쫓던 인간이 오히려 쫓기는 처지가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거의 주지 않는다. 쫓고 쫓기는 관계를 끊임없이 전복하며 거대한 추격전을 밀어붙인다. 카메라는 달리는 인물을 집요하게 따라붙고, 사운드는 작품 바깥을 의식할 여유를 지워버린다.

나홍진 감독은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액션으로 보여주고, 속도로 이해시키며, 관객의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호프’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거대한 세계를 현실에서 완전히 떼어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SF와 크리처, 압도적인 규모의 액션을 다루면서도 새로운 행성이나 낯선 세계를 창조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의 작은 마을 호포항에 우주적인 사건과 미지의 존재를 떨어뜨린다.

산과 바다, 오래된 마을 위로 대규모 추격전이 펼쳐지며 익숙한 풍경은 순식간에 낯선 재난의 공간으로 바뀐다. ‘듄’, ‘아바타’처럼 거대한 규모를 앞세운 해외 SF 영화는 많았지만, 이토록 한국적인 공간과 색채 안에서 크리처 액션을 구현한 작품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나홍진 감독은 늙지 않는다. 이렇게 젊고 스타일리시한 한국형 크리처물은 본 적이 없다. 화면은 단순히 규모를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인 자연과 정서, 낯선 존재의 움직임을 충돌시키며 ‘호프’만의 질감을 완성한다.

숨 막히는 긴장감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나홍진 특유의 블랙 코미디도 여전하다. 도저히 웃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예상하지 못한 대사와 행동, 날 것의 욕설이 터져 나온다.

이는 무거워진 공기를 잠시 환기하는 동시에 거대한 재난 앞에서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웃음은 비극을 덜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을 더욱 기묘하고 잔혹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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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부에는 중요한 변곡점이 찾아온다. 관객은 호포항을 뒤덮은 재난의 실체에 가까워진다.

여기서 ‘호프’는 영리하고도 고약한 선택을 한다. 진실을 알려줬으면서도 시선을 돌릴 기회는 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여전히 인간을 따라가고, 관객은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과 함께 다시 달리고 쫓긴다.

나홍진 감독은 생각할 틈마저 액션으로 빼앗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도 전에 속도를 높이고, 알고 있던 사실마저 잊을 만큼 거세게 몰아친다. 사건의 실체를 봤고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도 알지만, 어느새 인간을 응원하고 그들이 살아남기를 바라게 된다.

‘호프’가 단순한 액션물을 넘어서는 지점이다. 진실을 보여준 뒤 액션으로 잊게 만든다. 그 망각마저 영화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영화는 절정에 이를수록 더욱 거세진다. 황정민과 정호연의 사투에 조인성의 액션까지 겹쳐지며 마침내 ‘호프’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에 도달한다. 말에서 경찰차로 이동하는 조인성의 모습이 담긴 시퀀스는 ‘호프’를 꼭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본 적도 없던 액션의 탄생이다.

그러나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순간, ‘호프’는 돌연 속도를 늦춘다.

더 큰 쾌감과 통쾌한 결론을 기다렸다면 허탈할 수 있다. 크리처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까지 더해진다면 아쉬운 탄식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호프’는 크리처들의 입을 빌려 비로소 품고 있던 이야기를 꺼낸다.

왜 이들이 호포항에 왔는지, 그토록 거대한 추격전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그 해석의 실마리가 짧은 대화 속에 담겨 있다. 그렇기에 크리처의 존재와 마지막 대화는 쉽게 덜어낼 수 없다. 오히려 이 장면에 나홍진 감독이 외계 생명체를 호포항까지 불러들인 이유가 있다.

인간의 시선으로 두 시간을 달려온 관객을 멈춰 세우고, 전혀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엇을 봤고, 믿었으며, 잊은 채 달려왔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미친 듯이 달려온 영화가 마지막에 멈춰 선 것은 힘이 빠져서가 아니다. 바로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결국 ‘호프’는 ‘곡성’과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면서도 나홍진 감독이 오랫동안 천착해 온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인간의 믿음과 오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는 그 시선, 희망과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차이가 있다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곡성’이 미스터리와 공포, 곳곳에 숨겨진 장치를 통해 관객을 의심하게 만들었다면 ‘호프’는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 액션으로 관객을 몰아붙인다.

SF 장르의 특성과 크리처를 구현한 CG 기술을 둘러싼 호불호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 앞선 흐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 결말부 역시 충분히 뜬금없고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정도 규모의 액션과 이미지, 사운드를 한국적인 공간 위에 쏟아부은 작품을 다시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보고 듣는 것을 넘어 함께 달리고 쫓기며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호프’의 집요함이 완성된다.

지독하고, 집요하고, 고약하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

7월 15일 개봉. 러닝타임 156분. 15세 이상 관람가

강지호 기자 / 사진= 영화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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