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개그맨’ 故 전유성, 폐기흉 증세 악화로 사망…오늘(25일)로 1주기 [RE: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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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송시현 기자]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대부 고(故) 전유성의 첫 번째 기일이 찾아왔다.
고 전유성은 지난 2025년 9월 25일 폐기흉의 증세가 악화해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과거 급성 폐렴을 앓았으며 코로나19 감염 이후 폐 기능이 저하되어 2025년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까지 받았으나 호흡 곤란 증상이 지속되었다. 사망 직전에는 양쪽 폐에 공기가 차서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지면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할 만큼 위독했다. 그는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상황 속에 외동딸에게 유언을 남겼으며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전유성은 연극연출과를 졸업한 후 배우 시험에 낙방하다 당대 최고 코미디언 곽규석의 방송 원고를 직접 써서 제안한 것을 계기로 1969년 TBC ‘쑈쑈쑈’의 방송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그는 직접 무대에 오르며 코미디언으로 전향했다. 그는 과거 희극인들을 ‘코미디언’이라고 부르던 시절, ‘개그맨(Gagman)’이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사용하고 대중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몸 개그 중심이었던 상시 코미디 트렌드에서 특유의 시니컬하고 지적인 입담으로 새로운 코미디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가 최초로 시도한 것들은 일상에서도 있었다. 그는 대표적으로 ‘심야 볼링장’, ‘심야 극장’과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전유성은 KBS의 전설적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탄생을 이끈 개국 공신이다. 대학로 소극장 무대의 포맷을 방송으로 가져오는 아이디어를 냈으며, 극단 ‘코미디시장’을 창단해 김신영, 조세호, 신봉선 등 수많은 무명·신인 개그맨들을 발굴하고 키워낸 스승이었다. 그는 희극인 특유의 강압적인 군기 문화를 거부하고 후배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수평적인 소통을 중시했던 인물로 불렸다.
그는 유명 가수 진미령과 1993년부터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로 지냈는데 전유성은 스스로 “나는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만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들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지냈으나 2011년 공식적으로 이혼을 발표했다. 진미령은 훗날 이혼 사유에 대해 “전유성의 돈 문제와 성격 차이”라고 말했다.
송시현 기자 / 사진= 채널 ‘꼰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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