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리포트=강해인 기자] 방황하는 소녀의 성장기를 테니스 코트 위에 펼쳐 보인 영화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연이어 찬사를 이끌어낸 윤심경 감독의 장편 데뷔작 ‘캐리어를 끄는 소녀’가 스크린 문을 두드린다. 단편 ‘우리 집에 온 아이’를 확장해 청소년 성장담의 전형성을 과감히 탈피한 이 작품은 계급과 소속감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테니스’라는 역동적인 스포츠에 투영해 몰입감을 높였다.
‘캐리어를 끄는 소녀’는 갈 곳을 잃은 소녀 영선이 테니스 훈련 파트너로 수아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양부모에게 버려진 영선(최명빈 분)이 타인의 집에 스며들어 가족의 한 조각이 되기를 갈망하는 과정은 신파적 요소를 줄인 채 건조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된다. 캐리어 하나에 삶의 짐을 구겨 넣은 채 방황하는 소녀의 생존 본능은 관객들로 하여금 연민을 자아내고 공감을 끌어낸다.

삶의 가능성을 향해 온몸으로 공을 받아내는 영선의 치열한 성장기 속에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 작품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봤다.
‘캐리어를 끄는 소녀’의 중심에는 두 신예 배우가 있다. 충무로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유망주 최명빈과 문승아가 스크린을 장악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완성했다. 우선, 섬세한 내면 연기로 무장한 최명빈은 보육원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악착같이 버텨내는 영선의 당돌함과 불안을 절제된 표정으로 소화해 냈다.
최명빈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꾸준히 성장해 온 배우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어린 의뢰인’,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굿보이’·’트롤리’ 등에서 아역 캐릭터를 안정적으로 소화했고, ‘연모’·’신사와 아가씨’로 2021 KBS 연기대상 여자 청소년 연기상을 받으며 차세대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최명빈은 4개월간의 고된 테니스 레슨을 소화하며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했고, 눈빛뿐만 아니라 온몸의 리듬으로 인물의 결핍을 증명하며 몰입감을 높였다. 윤심경 감독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어딘가를 바라보는 최명빈의 시크한 눈망울에서 분노와 억울함을 읽어냈고,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여기에 독립·예술 영화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온 문승아가 수아로 합류해 최명빈과 팽팽한 긴장감을 구축했다. 문승아는 ‘소리도 없이’, ‘비밀의 언덕’ 등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흩어진 밤’으로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을 받으며 영화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캐리어를 끄는 소녀’에서 문승아는 호의에서 시작된 관계가 경계와 불안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미세한 표정과 말투의 결로 밀도 있게 그려냈다. 윤심경 감독은 “문승아의 대본 해석력과 압도적인 생동감이 대단했다”라고 극찬하며 작업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두 배우가 코트 위와 집 안팎에서 주고받는 우정과 질투, 동경과 경쟁의 랠리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맛보게 한다..

탄탄한 연기 내공을 지닌 김태훈과 유다인도 평온해 보이는 수아네 가족 내면에 깊은 균열을 자아내며 극의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딸의 성공을 위해 영선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아빠 성우 역의 김태훈은 차분한 태도 속에 냉정한 승부욕을 숨긴 채 숨 막히는 압박감을 불어넣는다. “영선이 네가 최대한 수아한테 좀 맞춰줘야겠다”라는 대사 속에서 묻어나는 서늘함은 영선이 마주한 현실의 높고 단단한 벽을 실감하게 한다.
반면, 영선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현실의 선을 긋는 엄마 지영 역의 유다인은 깊이 있는 눈빛 연기로 인물의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대변한다. 다정함 이면에 자리한 깊은 고민을 쿨한 텐션과 흐트러짐 없는 연기로 소화해 내며, 가족 안으로 새롭게 들어오려는 영선을 향한 다채로운 감정을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이들 부부가 뿜어내는 묵직한 존재감은 단단한 웰메이드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캐리어를 끄는 소녀’는 공간 연출을 통해 서사의 깊이를 배가시킨다. 제작진은 수아의 집과 테니스 코트라는 공간을 대비시키며 인물이 처한 고립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스크린 위에 시각화했다. 특히 계단, 복도, 정원 등 집 안팎의 공간은 영선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자 동시에 쉽게 넘을 수 없는 경계를 품은 장소로 활용되어 인물 간의 관계 변화를 시각적으로 은유한다. 여기에 랠리가 주는 규칙적인 리듬은 영선이 삶을 맞받아치는 생의 의지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극적인 감각을 극대화한다.

소녀의 성장담을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한 ‘캐리어를 끄는 소녀’는 다음 달 2일 개봉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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