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리포트=강해인 기자] 지독한 폐쇄감이 안기는 신선한 공포가 극장가를 찾아왔다.
온라인 괴담으로 떠돌던 디지털 원작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자본을 입고 새롭게 태어났다. 전 세계 최초로 한국 극장가에 간판을 내건 영화 ‘백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7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금일 개봉한 ‘백룸’은 전체 외화 예매율 1위에 오르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탄탄한 팬층을 가진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브 ‘만달로리안과 그로구’와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 ‘마이클’을 꺾고 이뤄낸 성과다.
‘백룸’은 노란 벽면과 끝없는 형광등 아래 펼쳐진 기이한 공간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한 클락(추이텔 에지오포 분)과 메리(레나테 레인스베 분)의 이야기다. 명작 제조기 A24와 공포 깎는 장인 제임스 완이 제작을 맡은 호러 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올해 가장 충격적인 미장센을 예고한 ‘백룸’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봤다.
‘백룸’은 할리우드의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작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메가폰을 잡은 케인 파슨스 감독은 2005년생으로 독학으로 영상 기법을 익힌 영상 세대다. 정식 영화 교육을 받지 않은 10대 청년은 2015년에 자신의 채널을 개설해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오직 개인의 감각만으로 미국 최고의 인디 스튜디오인 A24의 선택을 받았다. SNS에 뿌리를 둔 신세대 크리에이터가 영화계 전면에 활약하는 시대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

그의 무기는 철저한 비현실성이다. 익숙한 오피스 공간을 기이한 공포의 무대로 뒤바꾸는 케인 파슨스의 연출 방식은 기존 영화계의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그에게 명성을 안긴 건 유튜브에서 조회수 7,600만 회를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페이크 다큐멘터리 ‘백룸’이다. 이 영상은 인터넷 밈에 머물던 가상의 공간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이자 디지털 컬처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 역사상 최연소 메인 연출자라는 타이틀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두 베테랑의 명품 호흡은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이다. 칸영화제와 아카데미가 먼저 알아본 치웨텔 에지오포와 레나테 레인스베가 미지의 미로 속에서 만났다. 치웨텔 에지오포는 지하의 문을 열었다가 실종되는 가구점 대표 클락을 연기한다. 평범한 일상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을 눈빛 하나로 표현해 낸다. 그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백룸에 뛰어드는 심리치료사 메리 역은 레나테 레인스베가 맡았다. 그는 공포와 책임감 사이에서 요동치는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하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역대급 제작진이 뭉쳤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주의 스릴러의 명가 ‘A24’를 필두로 거장 제임스 완의 ‘아토믹 몬스터’, 그리고 글로벌 흥행작 ‘기묘한 이야기’의 랩스 엔터테인먼트까지 최고의 제작진이 오싹한 공포로 관객을 초대한다. 장르물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케인 파슨스의 재능에 끌려 힘을 모았고, 덕분에 ‘백룸’은 호러 장르의 매력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유전’과 ‘미드소마’를 제작했던 A24는 정교한 미장센으로 관객을 숨 막히게 해 왔다. ‘백룸’의 노란 벽면과 정적인 분위기는 A24가 추구했던 비주얼과 잘 어울려 시너지가 기대된다. ‘쏘우’, ‘컨저링’ 등의 작품에서 한정된 가옥을 배경으로 출구 없는 공포를 다뤄온 제임스 완의 공간 설계 노하우도 여과 없이 발휘됐다. 또한, ‘기묘한 이야기’에서 평범한 현실 아래 숨겨진 이면의 세계를 다뤘던 21 랩스의 감각까지 더해져 역대급 공포물의 탄생을 예고했다.
실제 세트가 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다. 작품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가구 전시장 지하를 구체적인 무대로 설정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형적인 사무실 미로를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최소화했고, 대규모 실제 세트를 지어 몰입감을 높였다. 이 아날로그적인 질감이 주는 섬뜩함이 시청각을 마비시키는 경험을 선사한다. 미로 같은 세트에서 배우와 스태프가 길을 잃지 않도록 제작진은 지도를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청각적 디테일 역시 공포를 극대화하는 요소다. 인공적인 형광등 소음 속에서 무질서하게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들은 어둠 속 미지의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획일화된 산업 사회에 대한 피로감이 응축된 결과물”이라고 작품의 본질과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영원히 반복되는 무기질적인 공간 속 고립은 현대인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서늘한 지옥을 시각화하며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백룸’은 디지털 플랫폼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메이저 극장 콘텐츠로 진화한 완벽한 교본이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 오직 정적과 공간의 왜곡만으로 극강의 서스펜스를 유도하는 영리함은 이 작품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 웹 시리즈를 즐기던 기존 팬들에게는 세계관의 매력적인 확장을, 장르물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전에 없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영화다.
예측 불가능한 공간과 압도적인 심리 서스펜스로 무장한 미스터리 호러 ‘백룸’은 지금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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