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우익 성향의 작가가 만든 작품을 소비하는 게 떳떳한가요?”. 지난 1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극장가에서 독보적인 예매율을 기록할 때 한 누리꾼이 건넨 질문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 속 원작 ‘슬램덩크’를 향한 관심이 덩달아 커지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쟁점은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우익 논란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국내 팬들로부터 손절을 당한 바 있다. 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자위대를 칭송하는 글을 올리면서다. 그는 “일본 자위대는 죽인 사람보다 도운 사람의 수가 더 많은 유일한 집단이다.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글을 공유했다.
자위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창설된 조직이다. 사실상 군대와 비슷하지만, 평화헌법에 의해 준군사조직으로 분류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공식기는 전범기다. 20세기 초반 일본 제국 시기에 군기로 쓰인 전범기는 일본이 대륙 침탈을 일삼으면서 꽂았던 깃발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전범기는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으며 언급될 때마다 논란이 따라붙는다. 국내외 스타 가운데 전범기를 연상하는 의상을 착용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한 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논란에 휩싸인 스타들은 사과문을 남겼고, 이에 대해 변명을 할 경우엔 더 큰 뭇매를 맞았다. 역사적으로 일본에 큰 상처를 입었던 한국에선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연결고리를 살펴보면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자위대 극찬을 단순히 ‘정치적인 성향’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을 극찬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슬램덩크’ 원작 단행본에 전범기를 연상하는 그림이 다수 노출됐던 것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슬램덩크’ 열풍과 관련해선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문화 영역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문화 교류 자체는 다른 영역의 이야기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있어 국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릇된 사상이 작품에 반영됐다면, 이는 집고가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를 알고 콘텐츠를 소비하느냐, 모르고 소비하느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작가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우리나라 위안부의 상처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 “더럽다”고 혐오했다. 이후 국내에서 비판 여론이 형성됐지만, 이와 별개로 ‘에반게리온’은 국내에서 거대 팬덤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었다.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이 같은 현상을 조롱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향해 “그래도 (에반게리온을) 볼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무조건적인 찬양, 팬심이 불러온 화다. ‘프로불편러’들의 지적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곪은 상처를 도려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편에서 숱하게 일본을 향해 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는 일을 방해해선 안 된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온라인 플랫폼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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