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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무 “팬레터는 항상 감동적…무대로 좋은 영향 전하고파” [인터뷰①]

김은정 기자 조회수  

[TV리포트=김은정 기자] 윤나무의 인터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다. 그의 머릿속에서 막 쏟아져 나온 날 것의 언어를 다듬는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다. 연극, 뮤지컬 무대는 물론 드라마까지 섭렵하며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한 그는 끊는 점까지 치닫기보다 은근한 미열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로 만나도 보고 싶은 배우 윤나무의 이야기.

윤나무는 지난해 12월 10일 개막한 뮤지컬 ‘팬레터’에 김해진 역으로 출연 중이다. 이번에 사연으로 돌아온 ‘팬레터’는 1930년대 자유를 억압하던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인 이상과 김유정 등과 순수문학단체 구인회의 에피소드를 모티브 삼아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더해 만들어진 모던 팩션(Faction) 뮤지컬이다.

6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윤나무는 “그동안 바쁘기도 했지만, 연극과 뮤지컬 섭외가 동시에 들어오면 보통 연극이 더 재미있는 대본이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팬레터’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쇼케이스와 초연 무대가 오를 쯤 김태형 연출에게 정세훈 역을 제안 받았었다”면서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당시 대본까지 받았지만 어떤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이번에 제안을 주셔서 몇 년 만에 대본을 다시 펴봤다. 지금까지 안 해 본 김해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좀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출연 결정을 했을 때 사람들이 되게 놀라워 했다. ‘연극배우가 갑자기 뮤지컬을 해?’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장르의 가림 없이 ‘대본 혹은 캐릭터의 끌림’을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 해왔는데 연극에 조금 더 끌렸던 것 같다. ‘팬레터’는 그 자체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니까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께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래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묻자 윤나무는 “김태형 연출도 비슷한 질문을 했었는데, 오히려 5~6년 전보다 지금 노래에 대한 부담이 없고, 노래를 하려는 의지가 좀 생겼다”고 답했다.

“그전까지 뮤지컬은 특화된 배우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노래와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나보다 잘하는 분들이 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노래할 때는 항상 부담이 컸는데, 이번에 연습하면서 그 짐이 많이 줄어든 걸 느꼈다. ‘연습만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 팀에 백형훈, 김경수, 윤석현 등 노래 잘하는 배우가 많아서 소리에 대해 묻기도 하고, 음악 감독님과 상의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소리를 믿고 자신 있게 해보면 될 것 같다’는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노래에 강점이 있는 배우는 아니잖나. 연극만 하다가 오랜만에 노래하는 모습을 색다르게 보고 좋아해 주시는 관객분들이 있다면 만족한다. 더불어 연기적으로 노래를 해석하는 작업도 너무 재미있었다. 연습하면서 ‘역시 뮤지컬에는 음악이 주는 어떤 힘이 분명히 있구나, 드라마랑 잘 섞이도록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나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김해진의 결을 만들었다. 특히 천재 소설가로서 드러낸 글을 향한 열망과 집착은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는 “김해진에게 글은 생명이다. 단순한 업 이상의 느낌”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자신이 빚어낸 김해진이라는 인물에 관해 심도 있게 설명했다. 그동안의 고뇌와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내가 생각한 김해진은 소설가라는 직업 때문에 사명감으로 글을 쓴 사람은 아니다. 글을 통해서 삶을 구축한 사람의 냄새가 났다. 오죽하면 편지를 받고 거기에 감동을 받아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겠는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를 떠올린다. ‘더욱이 새로 튼 잎이 한창 퍼드러질 임시[臨時]하야’ 첫 대사를 뱉기 전에 이 사람의 삶이 좀 더 마음속에 들어와야 공연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의 팬레터를 받고 내 몸과 마음까지 모든 걸 올인하는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윤나무로서는 상상도 못할 무게감인 것 같다. 김해진한테 글은, 세상에 좋은 글을 남기려는 의미도 분명히 있겠지만 본인의 생명을 유지하게 만든 한 가지이자 모든 것 같다.”

김해진을 마주하며 윤나무는 ‘왜’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 사람은 왜 마음속에 슬픔을 안고 살까, 이 사람은 왜 지금 우울할까.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 이면에는 왜 슬픔을 가지고 있을까”를 파고들었다는 것.

“소설가 김유정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김해진은 김유정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김해진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천재 작가’라고 이야기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외골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해진의 29년 간의 삶에는 피상적 사랑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다. 플라토닉의 한계치를 넘어간 사랑이랄까. 그런 면에서 인물을 구축하는데 쉽지 않았다. 나부터 믿어야 연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미친 놈 아니야?’ 싶을 정도로 공감이 안 되기도 했다.

인정받는 작가지만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해진이기에 히카루의 존재는 더 특별했을 거다.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준 묘령의 여인 히카루를 통해 치유받으며 공감을 바탕으로 한 깊은 사랑이 피어났고,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글과 자신을 동일시 했던 해진은 작가로서 한마디 한마디를 굉장히 신중하게 썼을 거다. 예민한 만큼 허투루 넘어가는 문장이 없을 테니 면역력이 떨어지면 해결할 힘이 없는 거다.

해진을 이렇게 분석하다 보니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나만 아프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많은 배우들과 하나의 드라마를 만드는 작업이잖나. 내가 어떤 의지로 대사를 하고, 노래 하는가에 따라 동료들과 다른 에너지와 리액션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촘촘하게 만들기 위해 집중했다. 사실 리허설을 할 때까지도 와닿지 않던 장면이 있다. 마지막에 세훈이 고백한 뒤 해진의 대사나 노래가 공감이 안 돼서 ‘이게 왜 이럴까?’ 한참을 생각했다. 이런 부분은 상대 배우와 연결고리를 만들다 보니 해결됐고, 무대에 올라 비로소 완성됐다.”

폐병에 걸린 김해진은 생이 다할 때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그저 폐결핵 환자가 아닌 작가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눈을 감고 싶은 바람이 있는지’ 묻자 윤나무는 “옛날에는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지만,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죽을 때가 됐는데 무대에 오른다는 건, 현실적으로 동료들과 무대 퀄리티를 생각했을 때 이기적인 욕심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무대에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컴퍼니와 배우들에게 못 할 짓이 아닌가.(웃음) 그런 때가 온다면 모든 것과 맞바꿀 명작 하나 연기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죽음을 준비하지 않을까 싶다. 김해진처럼 막 피를 토하고 거의 사경을 헤매는데 무대에 오른다는 건 너무 드라마틱하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50살을 넘기며 또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대에서 죽어야지..’ 이럴 수도 있다. 그때 다시 물어봐 달라.”

극 초반, 김해진은 단지 편지를 주고받은 사이인 히카루에 대해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당사자인 정세훈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결혼’이 내포한 의미에 대해 윤나무는 “대본상으로는 ‘나 결혼하게 될지도 모른다’가 끝이다. 그런 미래를 그리고 싶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정도가 서브 텍스트로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집을 찾으러 가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 대사를 해야 될까’ 고민했다. 당대 최고의 작가라면 무수히 많은 팬레터를 받았을 터. 해진이 어떤 이의 글만 보고 팬이 되기는 쉽지 않았을 거고, ‘이런 사람과 내가 평생을 같이 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다. 결혼식에 손 잡고 들어가는 상상이 아니라, 결혼이 곧 평생 함께 하는 것이라는 시대적 관점을 두고, ‘이 사람과 계속 같이 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팬레터로 팬들의 사랑을 느꼈을 윤나무. ‘힘이 된 메시지가 있었는지’ 묻자 그는 “팬분들의 편지를 보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내가 만든 캐릭터를 더 많이 사랑해주고, ‘윤나무’라는 배우를 높게 평가해준다는 생각에 항상 겸손해진다”고 이야기했다.

“팬레터를 보면 항상 감동적이고 감사하다. 특히 내가 했던 무대 위의 어떤 행위를 보고 ‘삶의 의지가 더 생겼다’ ‘꿈이 정해졌다’ ‘인식이 바뀌었다’ 등의 이야기를 해주시면 배우로서 보람을 느낀다. 공연을 보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거나, 삶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바뀐다면 ‘내가 지금 동료들과 고민해서 올리는 무대가 의미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김은정 기자 ekim@tvreport.co.kr / 사진=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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