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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가’ 배종옥 “변화는 힘들지만 안 하면 재미 없어요” [인터뷰]

성민주 기자 조회수  

[TV리포트=성민주 인턴기자] “나를 변화시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지만, 하지 않으면 너무 재미없어요.”

배종옥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MBN-드라맥스 수목드라마 ‘우아한 가’ 종영 인터뷰를 통해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한제국 캐릭터로 호평과 시청률을 동시에 잡은 비결을 털어놨다.

배종옥은 ‘우아한 가’에서 과거 올곧은 판사였으나 재벌의 뒤를 봐주지 않는다며 좌천당한 뒤, 오히려 재벌의 품으로 들어가 MC그룹 오너리스크 관리팀 TOP을 탄생시키는 한제국으로 열연했다. 한제국은 조곤조곤한 카리스마로 재벌가를 쥐고 흔드는 신선한 악역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지난 17일 종영한 ‘우아한 가’의 최고 시청률은 MBN-드라맥스 합산 10.1%(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전국 기준)였다. 배종옥의 예상대로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치솟으며 MBN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 기록까지 달성했다.

다음은 배종옥과의 일문일답

– ‘우아한 가’를 마치신 소감이 어때요?

한제국에 대해서 애정이 많았어요. 한제국만의 눈 메이크업이 있는데, 촬영이 끝난 오늘도 메이크업하면서 그 느낌을 요구할 정도에요. 끝났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 현장에서 임수향, 이장우 등 젊은 연기자들과 함께하는 건 어땠나요?

현장에서 젊은 친구들과 연기하는 것이 재밌어요. 젊은 친구들은 제가 이제까지 배워왔던 것과 해왔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게 있어요. ‘저렇게 해서 표현이 될까?’ 싶은데 방송을 보면 그런 모습이 나와요. 그런 걸 보며 ‘그래, 내가 해왔던 방식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자기반성도 들고, 요즘 친구들이 가는 방향들이 트렌디하고 시대에 맞는다는 느낌도 들어요.

– 한제국을 연기하면서 어떠셨나요?

이번 한제국을 하면서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는 악역이라면 눈에 힘을 주고, 대사를 강조하는 방법들을 썼어요. 이번에는 그냥 대사를 후루룩 날리면서 중요한 포인트만 집어요.

우리 시대에는 과하게 표현하라고 배웠거든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과장되게 자기를 표현하지는 않아요. 이번에 한제국 캐릭터를 만들 때 그런 부분들을 적용해 봤더니 반응이 좋았던 것 같은데 대중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제국이 멋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런 것 때문일 거예요.(웃음)

– 한제국에 대한 애정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제국은 좋은 인물은 아니죠. 없어져야 하는 악의 축이긴한데, 선과 악의 개념을 떠나서 ‘내가 이런 역할은 앞으로 할 수 없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캐릭터였어요. 우리나라 현장에서 내 또래의 여배우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는데 제가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런 것들은 보통 남자 배우들이 해오던 거잖아요. 사실 한제국도 처음에는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어요. 그런 남자 배우의 영역에 여자가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도 드라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또 한제국은 여자이면서 결혼도 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에 그렇게 일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그런 모습을 주인공으로 부각하면서 끌고 가는 드라마가 없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한제국을 매력있는 여자와 인간으로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면에서 시청자들이 공감한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느끼는 한제국은 왜 그렇게 매력있어요?

– 비주얼도 큰몫했고, 배종옥만이 표현할 수 있는 카리스마도 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요즘은 비주얼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없었다면 이렇게 다가오지도 않았겠죠. 이번에 수트 차림이 멋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우리 코디가 너무 열심히 해줬죠. 젊은 친구들은 멋있다고 얘기하고, 나이 드신 분은 ‘저거 당장 죽어야하는데 언제 죽냐’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 한제국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나요.

어려웠던 게 많아요. 연기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이게 과연 먹힐까?’ ‘남자가 할 수 없는 느낌이 표현됐을까?’ 궁금했어요. 연기하면서도 반신반의했지만 밀어붙인 부분이 있었어요.

1, 2부 편집 마쳤다고 할 때 감독님께 처음으로 물어봤어요. ‘여성이 해서 다른 파워가 느껴졌나요?’ 감독님이 충분히 느껴졌다고 해서 ‘오케이 성공했다’ 했어요. 감독님이 편집하면서 보니 여성이 권력을 휘두를 때 나오는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파트가 있었대요. 봤더니 제게도 보였어요. 그래서 ‘잘 되어가고 있구나’ 생각하고 그때부터는 믿고 갔어요.

– 한제국과 실제 배종옥과의 싱크로율은 어떤가요?

한제국은 저랑 아주 달라요. 저는 그렇게 제 욕망을 휘두르고 싶진 않아요. 저는 되게 조용한 편이에요. 고등학교 땐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 학생이었어요. 나대고 앞에 서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제 힘을 이용해서 뭘 해보려고 그러진 않는 거 같아요. 그냥 저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죠. 뭐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한다는 점에서는 한제국과 비슷할 수 있겠네요.

– 한제국을 두고 ‘본 적 없는 악역’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펠리시티 존스 분)의 엄마의 대사를 집중해서 봤어요. ‘남을 설득시킬 때 절대 소리치거나 화내지 말라’라고 하는데, 조용조용하게 의사를 말하는 게 남을 훨씬 설득시킬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게 한제국을 형상화시키는데 많이 적용됐어요.

한제국은 여러 사람과 만나고, 힘으로 밀어붙이고 회유도 하며 목표를 향해 달리는 여자잖아요. 모든 사람에게 소리치며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타당하게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힘으로 이끌든지, 논리로 이끌든지. 그래서 그다지 소리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파워가 느껴진다면 그 덕분인 것 같아요.

-직전작 ’60일, 지정생존자’도 그렇고, 임파워링하는 여성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여배우로서의 삶과 관련이 있나요?

어렸을 때 배종옥이라는 이름을 나타낸 작품은 MBC 미니시리즈 ‘행복어사전’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저의 외모나 목소리로 드라마의 주역을 하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그때 기자 역할을 맡았는데, 그 기자는 동등한 남자 동료와 싸우기도 하고 상사한테 따지기도 하는, 기자 의식과 자아가 강한 역할이었어요. 지금은 당연하지만 30년 전에는 그게 너무 독특한 캐릭터였어요. 그 캐릭터로 배종옥이라는 여자가 도시 여성 이미지로 발돋움한 거예요.

그다음에 MBC ‘도시인’이라는 작품을 했고, MBC ‘여자의 방’이라는 작품에서 절정을 이뤘어요. ‘여자의 방’은 여자 셋이 한아파트에서 사는 거였어요. 저는 패션 디자이너였고, 고현정은 작가 지망생이었나 그랬고, 이미숙 언니는 이혼 후 번역일을 했던가? 그런 여자 셋이 함께 한집에서 살며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그 시대에는 앞서가는 생각들이었어요. ‘여자가 시집가지 않고 어떻게 따로 나가 살아?’ 하는 시대였거든요.

그러다 결정적으로 KBS 2TV ‘목욕탕집 남자들’을 하게 된 거죠. 그 안의 윤경은 속사포같이 얘기하면서 사회에 저항하고, ‘부모는 왜 그래’ ‘이건 왜 이래’ 막 따져대는 역할이었어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질색하고, 여자들은 ‘어휴 시원해. 이 말도 해줬으면 좋겠어’ 했어요. 그래서 저는 남자보다는 여자 팬이 많았어요.

저는 배우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불편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그러려니 해요. 그렇지만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구나. 그러니까 나에게 이런 애정을 쏟아부어 주시면서 이런 말을 대변해주시길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들도 자기 이야기를 제 캐릭터를 통해서 했던 부분도 있을 것이고요. 그런 게 받침이 됐을 수도 있겠어요.

제가 맡은 자의식이 강한 역할 안에서 저는 굳이 캐릭터에 멈추지 않고 ‘자 여자들이여 눈을 떠. 그게 아니어도 괜찮아. 이런 일도 있잖아’ 이런 이야기를 은연중에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남자랑 헤어져도 괜찮아, 또 남자가 오겠지. 남자가 오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인생은 너의 인생인데 왜 그 때문에 힘들어. 직장생활 하지 않아도 괜찮아, 또 다른 일이 있겠지.’

제가 했던 말 때문에 누군가가 속이 시원하다면, 제가 연기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부심도 느껴져요. 그렇지만 제가 그런 역할만 한 건 아니에요. SBS 시트콤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도 했는데 제가 ‘그거 했다’ 하면 ‘아 맞다, 그거 하셨죠?’ 이래요. 딱 배종옥을 보면 그런 건 안 하는 배우처럼 생각이 드나 봐요. 근데 센 역할만 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노력을 정말 많이 하시네요.

노력은 당연한 일인 것 같고, 재밌어요.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은 지루하잖아요. 나를 변화시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지만, 하지 않으면 너무 재미없어요. 저는 영화를 봐도 배우들을 통해서 많이 배워요. ‘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니다. 나이 들면 이렇게 가야지’ 생각해요.

-혹시 롤 모델로 삼는 배우도 있나요?

대학 다닐 때는 메릴 스트립이 롤 모델이었어요. 요즘은 엠마 톰슨의 진중함과 깊이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전에는 별로 매력 없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개봉이 안 된 ‘위트’라는 작품에서 완전 빠졌어요.

-필모그래피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긴 세월을 한두 개로 꼽긴 힘들 것 같은데.(웃음) 세상에 제 이름을 알린 작품은 KBS 2TV 미니시리즈 ‘왕룽일가’였어요. ‘행복어사전’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고, 그다음에 KBS 2TV ‘거짓말’을 통해 노희경 작가와 만나 멜로를 할 줄 아는 배우가 되었어요. MBC ‘천하일색 박정금’, SBS ‘내 남자의 여자’도 있고요. 영화에서는 ‘질투는 나의 힘’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우아한 가’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최근 연예계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어요. 혹시 그에 관해 선배로서 해주실 말이 있는지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자꾸 인터넷에서 자기 글 보지 말라 그래요. 인간은 누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괜찮아, 욕하려면 하라지’ 말은 하지만, 누가 나를 싫어한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스스로 힘들게 해요. 제 박사학위 논문은 ‘드라마 게시판’ 얘기인데, 그래도 저는 게시판 보지 말라고 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돼요. 기사를 통해서, 매니저들을 통해서.

그래도 너무 집중해서 보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제하면서 내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거죠. 또 나쁜 말이 싫으면 나를 변화시키든지, 내가 변하는 게 싫다면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다보니 그런 과부하가 걸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너무 안타까운 일이죠.

-악플은 전혀 안 보시나 봐요.

저는 정말 안 봐요. 안 보는 버릇하니까 볼 일이 없더라고요. 제 기사도 전해 들어요. 남는 시간이 있으면 책 보든지 영화 보든지 운동해요. 그러기에도 바빠요.

-책 많이 읽으시나요?

책은 틈틈이 읽으려고 하죠. 최근에는 ‘앵무새 죽이기’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어렸을 때 안 읽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서 읽어봤어요. 초반부와 중반부에는 지루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몰아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용기와 신념의 이야기예요. 안 읽어보셨으면 꼭 읽어보세요. 어렸을 때 읽어보셨더라도 다시 읽어보시고.

어렸을 때 읽는 책은 의무감 때문에 제대로 다가오지 않잖아요. 제가 얼마 전에는 ‘개선문’을 다시 읽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던 것 같은데, 지금 읽으니 이게 이런 이야기였구나 싶었어요.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아껴서 읽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길을 가실 건가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제 연기 인생의 동력이에요. 제 성향이 그래서 앞으로도 새로운 길로 갈 것 같아요. 반복되는 캐릭터도 아주 안 할 수는 없겠지만요. 하도 많이 해서 뭘 해도 새로울까 싶었는데 한제국이 있었잖아요. 그랬듯이 어딘가에서 창작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제 다른 모습을 발견해서 쓰겠죠?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성민주 기자 meansyou@tvreport.co.kr /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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