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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이 고돼도 일단 극장에서…흰 스크린 위 ‘국보’가 붉게 타오른다 [리뷰]

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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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TV리포트=강지호 기자] 하얀 스크린 위에 붉게 물드는 가부키가 예술에 대한 감독의 헌사와도 같다. 175분 속에 인생을 눌러 담아 극장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숨죽이게 만드는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국보’는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뛰어넘어야만 했던 두 남자의 일생일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간절히 바랐던 것을 보기 위해 생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쳤던 키쿠오(요시자와 료)와 재능 앞에 도망쳤던 가부키 명문가의 아들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의 무대와 삶을 담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 그중에서도 ‘온나가타(여성 배역을 연기하는 남성 배우)’를 주제로 전개된다.

▲모든 것을 뒤덮는 흰색, 올라가는 붉은 생명…강렬한 대비 속 처절한 아름다움

영화 ‘국보’는 눈을 닮은 흰색과 피를 닮은 붉은색의 대비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막이 오르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관객은 키쿠오의 가부키 공연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얀 눈밭에 흩뿌려지는 피는 키쿠오가 맞이한 삶의 전환점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후 키쿠오는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에 의해 가부키 명문가 ‘탄바야’에 입성한다.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는 피에서 피로 이어지는 세습의 전통을 가진 예술이다. 피가 전부인 세계의 이방인이 된 키쿠오는 그곳에서 하나이 한지로의 아들 슌스케와 만나게 된다.

키쿠오와 슌스케는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을 가진 키쿠오는 아무리 노력해도 슌스케가 가진 혈통을 가질 수 없다. 피를 가진 슌스케는 압도적인 키쿠오의 재능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하나이 한지로가 올라야 했던 ‘소네자키 동반자살(소네자키 신주, 曽根崎心中)’에 키쿠오가 대신 오른 날, 키쿠오는 슌스케에게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건 너의 피야. 나는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너의 피를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라며 고백한다. 이를 들은 슌스케는 하얗게 칠해진 키쿠오의 얼굴에 붉은 물감을 대신 올려준다.

이상일 감독은 “눈을 닮은 흰색은 ‘죽음’, ‘모든 것들을 뒤덮어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반면 피와 닮은 붉은색은 생명이 깃든 색이라고 느꼈다”며 “가부키 화장도 그렇다. 가장 먼저 배우의 얼굴을 흰 물감으로 전부 뒤덮는다. 배우 자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뒤덮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붉은색의 화장을 올린다. 이것은 배역의 생명을 집어넣는 행위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의 말처럼 슌스케가 키쿠오의 얼굴에 붉은 물감으로 대신 화장을 해주는 장면은 마치 피를 나눠 주는 것만 같다. ‘진짜 피’ 대신 ‘가부키의 피’가 새겨지는 순간은 알 수 없는 경건함 속에 관객을 숨죽이게 만든다.

하지만 슌스케는 ‘탄바야’의 피를 가질 수는 없다. 일련의 사건들 이후 무대 위 토해진 하나이 한지로(백호)의 피는 혈통의 고리 속으로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이방인인 키쿠오의 위치를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그럼에도 키쿠오는 계속해서 얼굴을 하얗게 칠한다. 그리고 그 위에 계속해서 자신만의 피를 올린다. 붉게 물드는 가부키 화장과 함께 그는 계속해서 무대에 오르고 그 처절한 아름다움은 안쓰럽게도 벅차오른다.

가부키라는 숙명을 떠날 수 없는 키쿠오의 삶은 그렇게 영화 속에서 타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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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을 쓴 예술 영화 ‘국보’…이방인이었던 감독의 시선

아카데미 일본 출품작으로 선정된 영화 ‘국보’는 일본에서 1,207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일본 실사 영화 가운데 흥행 1위를 목전에 두고 있다. 상업 영화가 아닌 예술성이 짙은 영화임에도 작품성과 입소문을 통해 전설을 썼다.

재일한국인인 이상일 감독의 출신은 자연스레 함께 화제가 됐다. 이에 이 감독은 “나는 한국이 뿌리인 사람이지만 그 점이 직접적으로 이 영화와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혈통이라는 것, 외부에서 온 인간이라는 것과 같은 영화식의 구조는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요소(재일교포)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장 일본스러운 예술인 가부키가 이상일 감독의 시선 끝에서 ‘국보’로 화려하게 꽃피운 것은 결국 스크린 뒤 감독의 삶이 담겼기 때문인 듯하다.

‘국보’에는 이상일 감독의 삶과 함께 그가 바라본 아름다움도 담겼다. 이 아름다움은 단순히 영화의 미장센이나 ‘보기에 좋은 것’을 넘어서 예술이라는 것을 대하는 인간의 찬란함을 의미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괴물’처럼 묘사된다.

자신의 삶도, 가족도,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던져 불타는 이의 무대 뒤 모습은 처절하다. 그럼에도 무대 위 그의 찬란한 모습은 희생된 이들마저 박수를 치게 만든다.

이상일 감독은 ‘생을 바쳐 불타는 찬란함’을 스크린 속에 담아냈고 이를 알아본 관객들의 안목을 통해 ‘국보’는 극장에 새로운 방향을 불러왔다.

1년 넘게 실제 가부키 수련에 힘쓴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류세이 등 배우들의 눈을 뗄 수 없는 열연과 극장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화려함은 ‘국보’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일부에 불과하다.

작품성에 비해 대중성은 부족할지 모른다. 일본에서 통한 ‘가부키’라는 주제가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3시간이라는 분량도 어떤 이에게는 지나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스크린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이 이 걸작을 봐주길 바라게 된다. 일본에서의 흥행도 결국 이런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더 밀접하게 느껴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다”는 이상일 감독의 말처럼 극장을 찾은 ‘국보’의 매력이 국내 관객들에게 와닿을 수 있을까.

스크린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벅차오름을 간직한 영화 ‘국보’는 오는 19일 극장을 찾는다.

강지호 기자 khj2@tvreport.co.kr / 사진= 영화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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