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리포트=강지호 기자]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지만, 동시에 어디에나 속할 수 있는 사람. 한국과 미국, 전 세계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 저스틴 민에게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어느 한쪽으로 정의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넓은 세계를 품고 있는 배우, 마치 영화 ‘흐르는 여정’ 속 와인잔에 담긴 막걸리 같은 매력.
인물들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처럼, 저스틴 민 역시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색다른 매력을 지녔다. 낯선 것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뜻밖의 조화.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잔잔하면서도 강렬했다. 서로 다른 문화의 경계에 서 있으면서도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저스틴 민의 모습은 영화 속 민준과도 닮아 있었다.
저스틴 민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흐르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흐르는 여정’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저스틴 민은 한국을 찾은 민준 역을 맡아 춘희 역의 김혜옥과 호흡을 맞췄다. 이번 작품은 그가 한국에서 처음 촬영한 장편영화다.
이날 저스틴 민은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할 기회를 찾았지만, 쉽게 마음을 움직이는 대본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흐르는 여정’의 대본을 읽자마자 감동을 받았다. 민준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이자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이가 들면서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저스틴 민은 앞서 이번 작품을 ‘한국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처음 촬영한 장편영화이기도 하지만, 민준과 한국의 관계가 나와 한국의 관계를 거울처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민준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낯선 곳에 오지만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 나라를 알아가면서 점점 좋아하게 된다”며 “그 과정이 내가 한국을 알아가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의 첫 작업이라는 의미를 넘어, 작품 속 인물의 여정에 자신의 경험이 겹쳐 있었던 것.
실제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저스틴 민에게 한국은 오랫동안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어린 시절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거리의 모든 사람이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정작 그 안에서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저스틴 민은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 자주 오면서 문화와 역사, 언어를 더 많이 알아가게 됐다”며 “이제 한국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도 생겼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다는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가 모두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전했다. 민준이라는 인물에 더욱 마음이 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민준을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녹여냈다. 극 중 막걸리를 와인잔에 담아 빨대로 마시는 장면도 저스틴 민의 제안에서 나왔다.
그는 “막걸리는 원래 대본에 있었지만 와인잔에 담아 빨대로 마시는 방식은 감독님께 제안했다”며 “한국 전통 술을 서양식 잔과 빨대로 마시는 모습이 민준이라는 인물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는 저스틴 민에게 자신의 뿌리뿐 아니라 가족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특히 춘희 역의 김혜옥과 호흡을 맞추면서 미국으로 이민 온 어머니의 삶을 떠올렸다고.
저스틴 민은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고 미국에는 어떻게 오시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을 하셨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 머릿속에 어머니는 여전히 40대 여성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를 보면 어느새 60대 중반이 되셨다”며 “부모님이 영원히 곁에 계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더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도 이어졌다. 저스틴 민은 “이 세상에 영원히 남는 것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며 “결국 남는 것은 우리가 서로 맺은 관계와 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에서 다루는 존엄사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그런 상황에 직접 놓이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을 것 같다”며 “이 영화의 아름다운 점은 어떤 선택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여성의 여정과 결정을 따라가면서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저스틴 민이 작품에 끌린 또 다른 이유는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힘든 일이 있다고 매일 슬픈 것도 아니고 성공했다고 매일 기쁜 것도 아니다. 인생은 그 모든 것이 혼합된 것”이라며 “영화 속 인물들도 저마다의 고통이 있지만 기쁜 순간이 있고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감독과 소통한 경험도 특별하게 남았다. 저스틴 민은 “처음에는 서로의 의도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서로 작품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어 이상의 것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저스틴 민은 감독을 자신이 아는 사람 중 가장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어머니의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촬영에서도 감독님의 사랑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미소 지었다.
특히 그는 감독이 최근 관객들과 영화를 만나는 과정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저스틴 민은 감독이 지난주 내내 울었다고 언급하며, 작품에 담긴 감정이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것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관객과의 만남은 그에게도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저스틴 민은 “최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관객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지만 영화가 그분께 위로를 전한 것 같았다”며 “우리가 왜 이 작품을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관객과 나눈 특별한 순간을 기억했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한국에서의 첫 장편영화 작업을 마친 저스틴 민은 앞으로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이상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50대 50 비율로 하고 싶다”며 최근 한국 작품 촬영도 마쳤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 두 문화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그는 이제 한국이라는 또 하나의 무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이어간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기에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 저스틴 민의 다음 여정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강지호 기자 /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 ‘흐르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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