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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큰아버지·조부 객사하셔”…’경주기행’ 母에 녹인 실제 가족의 아픔 [RE:인터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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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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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배우 이정은이 ‘경주기행’을 선택하기까지 느꼈던 부담감부터 가족 복수극을 바라본 솔직한 생각까지 털어놨다.

이정은은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경주기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을 떠난 뒤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 동안 기다려온 네 모녀가 살인범을 직접 납치하며 시작되는 가족 복수극이다.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이 한 작품에서 가족으로 호흡을 맞춘다는 점으로 기대를 모은 ‘경주기행’은 장편 데뷔작 ‘갈매기’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을 받은 김미조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개봉 전 하와이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지난 3월 열린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정은과 김미조 감독의 인연은 영화 ‘오마주’에서 시작됐다. 당시 김미조 감독은 스크립터로 현장에 참여했고 이정은은 배우로 그를 처음 만났다. 이날 이정은은 김미조 감독의 첫인상에 대해 “좀 의문스러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갈매기’가 감독님들 사이나 영화계에서 굉장히 센세이션하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작품인데, 그런 감독이 갑자기 ‘오마주’에서 스크립터를 한다고 하니까 ‘무슨 스파이도 아니고 뭘 하러 온 걸까’ 싶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신수원 감독님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여성 감독들에게 여러 가지 모범처럼 보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배울 것을 얻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거의 촬영이 끝날 때쯤 ‘시나리오를 보낼 테니까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떠올렸다.

현장에서 스태프로 만난 이들이 이후 연출자로 작품을 선보일 때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이정은은 “나의 미래가 그분들의 손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미조 감독은 ‘경주기행’의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부터 이정은을 옥실 역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정은에게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이정은은 “다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며 “옥실이 ‘이렇게 꾸역꾸역 내가 용서하게 될까 봐 두려웠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을 내가 구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작품에서 굉장히 큰 변화를 갖는 인물들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님이 그리는 방향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묘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면서 시나리오를 봤다”며 “사실 좀 얼떨떨하게 오케이를 했다”고 털어놨다.

좋은 시나리오라는 확신과 별개로 직접 그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이정은은 “해보면 너무 좋은 시나리오인데 내가 당사자가 되면 얼마나 괴로운 작업이겠나. ‘이거 잘 잡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정은은 결국 자신이 가보지 않았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인물이 끝까지 가는 역할을 맡는다는 게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점은 있었다”면서도 “그래도 안 가본 길이니까, 배우니까 안 가본 길을 가봐야 되는 시간들이 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객분들은 내가 했던 것에 대한 기억으로 나를 보실 거다. 그게 익숙하고 좋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면의 얼굴들을 보여드려야 하는 지점이 저한테도 숙제”라며 “안 가봤으니까 도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극 중 옥실은 막내딸을 잃은 뒤 8년 동안 슬픔과 분노를 간직한 채 살아온 인물이다. 이정은은 오히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절제하는 방향으로 옥실을 만들어갔다.

이정은은 “감정적인 부분은 아빠 쪽에 많이 치우치게 했다. 옥실은 집에서 가내 수공업을 하는 재봉사이기도 하지만 리모컨을 움켜쥔 집안의 실세이자 경제권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며 “이 가족의 붕괴를 가장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감정의 절제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특히 옥실을 이해하는 데에는 자신의 가족사가 도움이 됐다. 이정은은 “실제로 우리 큰아버지가 밖에서 객사하셨고 조부님도 객사하셨다. 그래서 조모님이 외출을 안 하셨다. 되게 밝은 분이었는데 ‘내가 집에서 외출했을 때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라는 트라우마가 외출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옥실도 내가 없을 때 남편이 죽고 아이가 밖에 나갔을 때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내 눈 안에 가족이 보이게 하는 것”이라며 “이 가족이 얼마나 폐쇄적으로 똘똘 뭉쳐 있었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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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옥실에게는 자신이 복수하는 것과 딸들이 함께하는 것이 별개의 일이 아니었다고 바라봤다. 이정은은 “옥실이 ‘같이 복수하자고 어떻게 애들을 꼬드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가족과 자신을 분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복수하는 것과 가족이 같이 가는 게 당연한 사람이라는 점이 중요했다”고 짚었다.

막내딸 경주 역의 황현정과는 촬영 전부터 실제 모녀에 가까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황현정은 이정은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직접 모아 전달했고, 이정은 역시 황현정의 집을 찾아가 실제 어머니를 만났다.

이정은은 “왜 나만 받을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갔는데 엄마가 나랑 좀 비슷하게 생기셨더라”며 “이건 너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희 엄마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으니 힌트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정이가 엄마에게 애교도 많이 부리는 딸이었다. 현정이의 기호에 맞춰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모녀의 관계가 저한테는 롤모델이 됐다. 굉장히 좋은 레퍼런스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정은의 거친 액션도 볼 수 있다.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한 장면도 적지 않았다. 이정은은 함께한 무술감독에 대해 “현장에서 ‘하나, 둘, 셋’ 하면 다 움직인다. 약간 가스라이팅 받은 것처럼 ‘저 못할 것 같아요’ 하면서도 몸은 다 하고 있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분의 능력으로 이 모든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리더십이 굉장히 세고 여자 배우들도 엄청 신뢰하는 분”이라며 극찬을 더한 이정은은 “그분 덕분에 액션신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과거 장진 감독에게 들었던 조언도 공개했다. 이정은은 “나는 눈도 안 크고 키도 안 크지 않나. 장진 감독이 맨날 ‘선배님은 많이 움직여야 돼요’라고 했다”고 웃었다.

자신의 액션을 두고는 “사실 나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약간 ‘아줌마 액션’이다. 머리 쥐어뜯고 그러는 것”이라면서도 “제가 얼굴 액션이 가능하다는 건 안다. 얼굴을 좀 구기고 있으면 ‘실감 나 보인다’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족이 직접 살인범을 납치해 복수에 나선다는 설정을 두고는 사적 제재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이정은은 “내가 그런 사람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며 “이 영화는 단언코 사적 제재를 권장하거나 그것의 미덕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가족 구성원이라고 해도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고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보는 게 이 작품에는 더 적합할 것 같다”며 “이 엄마도 결국 벌을 받고 죽은 사람을 절대 다시 만날 수 없다. 그런 비극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복수로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작품을 접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생각을 전했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사회적인 인식을 바꿔주는 역할이 크기도 하지만 사실 소재거리로 끝날 수도 있지 않나”라며 “이 영화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일을 당하면 나는 어떨까’에서부터 출발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관련 자료를 접하면서 비극을 겪은 뒤 살아가는 방식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그는 “나의 행복은 이걸 해결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그건 해결이 안 되니까 지금 여기서 놓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집안이 무너졌을 때 과거는 신경 쓰지 말고 여기서부터 차근차근 다시 쌓자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때 그놈을 잡아야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며 하루 종일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빚의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그런 견해의 차이에서 나오는 비극들이 굉장히 많다”고 덧붙였다.

부담감과 두려움을 안고도 ‘안 가본 길’을 택한 이정은은 ‘경주기행’에서 8년 동안 가족의 울타리를 지켜온 엄마 옥실로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인다.

영화 ‘경주기행’은 오는 26일 개봉한다.

강지호 기자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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