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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양원모 기자] 목숨을 건 협상이었다.
20일 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 당시 탈레반과 직접 협상에 나섰던 이른바 ‘선글라스맨’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사건은 한국인 23명이 탄 버스가 탈레반에 납치되면서 시작됐다. 무장한 남성들은 승객들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현금 등을 빼앗은 뒤 이들을 끌고 갔다. 탈레반은 수감 중인 조직원 23명과 한국인 인질을 맞교환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인질 1명을 살해했고, 6일 뒤 두 번째 희생자까지 발생했다. 이어 다시 24시간의 시한을 제시하며 추가 살해를 예고했다.
당시는 탈레반과 미국이 첨예하게 맞서던 시기였다. 미국은 테러 조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아프간 정부 역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생중계 브리핑이 진행될 만큼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에 한국 정부는 국가정보원에서 육성된 블랙 요원 ‘선글라스 맨’을 현지에 파견했다. 목표는 이미 희생된 2명을 제외한 21명을 모두 살려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탈레반 수장을 만난 선글라스 맨은 그가 과시욕이 강하다는 점을 노려 “인질 석방으로 수장의 힘을 보여달라”고 설득했다. 이 판단은 적중했다. 탈레반이 다음 날 별다른 대가 없이 인질 2명을 풀어준 것. 하지만 협상은 재소자 석방 요구를 놓고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국 측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 연합군과 군사 작전까지 준비했다.
분위기를 뒤집은 건 선글라스맨의 ‘벼랑 끝 전술’이었다. 탈레반 수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대리인 아즈만에게 “추가 살해가 벌어지면 평화 협상을 중단하고, 군사 작전에 나설 수 있다”고 압박했다. 결국 휴가에서 돌아온 수장은 “조속히 합의를 보자”고 연락했고, 28일간 이어진 극비 협상 끝에 남은 인질 석방이 결정됐다. 사건 발생 40일 만이었다.
마지막 변수는 ‘공동 인터뷰’였다. 탈레반은 “우리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리겠다”며 선글라스 맨에게 카메라 앞에 함께 설 것을 요구했다. 신분 노출 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선글라스 맨은 인질들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렵게 모습을 드러냈다. 탈레반은 약속대로 한국인 12명을 석방했고, 다음 날 나머지 7명도 풀어줬다. 이후 무사히 활동을 이어간 선글라스 맨은 현재 정년퇴직한 뒤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원모 기자 /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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