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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인과 하나도 안 닮았다 말하는 이보영에게 [인터뷰]

정윤정 에디터 기자 조회수  

[TV리포트=박설이 기자]’마더’ 이후 5년 만의 인터뷰다. 이보영이 JTBC ‘대행사’를 보내며 서울 압구정 모처에서 취재진과 만났다. 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주인공 고아인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그린 우아하게 처절한 오피스 드라마 ‘대행사’에서 이보영은 주인공 고아인을 연기했다. 

“부담 가질 필요 있나요? 안 되면 안 되는 거죠”

종영 소감을 묻자 이보영은 “재미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오피스 드라마는 처음이고 많은 사람과 한 공간에서 연기한 것도 처음이다. 소통이 잘되는 팀이어서 같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같이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기분이었다”라며 ‘대행사’ 팀워크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행사’의 현장 분위기는 이보영의 밝은 텐션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정말 많은 배우들이 나오지 않나? 즐겁게 찍은 만큼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나와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행사’를 향한 주변 반응도 오랜만에 특별했다. 이보영은 “데뷔한 지 오래되니 (작품을 해도) 반응을 잘 안 주는데, 지난주 친한 스크립터가 ‘언니 너무 재미있어, 과몰입 중이야’라면서 오랜만에 문자를 줬다”면서 “저는 드라마가 재미 없다. 일로 느껴진다. 대본을 보면 재미있는데 영상으로 보면 ‘왜 저렇게 했나’ 부족한 부분만 보여서 과몰입이 잘 안 되는데 그 친구가 재미있게 봤다고, ‘언니 덕에 살고 있다’고 얘기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동시간대 전작 ‘재벌집 막내아들’의 큰 성공으로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이보영은 “전혀”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부담 가질 필요가 없었다. 안 되면 안 되는 거고”라고 쿨하게 말했다. 다만 포스터는 부담스러웠다고. 이보영은 “감독님에게 ‘왜 포스터에 나를 혼자 세웠느냐’라고 얘기를 하긴 했다. (잘 안 되면) 책임 전가가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었다”라면서 “나이가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용서 되고 이해가 되는, ‘저 정도면 돼’ 하는 시기는 지났더라.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기는 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여성이 주인공이 작품 많아진 것, 감사한 일이죠”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 이보영은 ‘대행사’를 통해 ‘원톱 여성배우’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이보영은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는다. 그는 “(시청자는) 방송 끝나고 일주일이면 다 잊는다. 그냥 순간에 감사하고 ‘잘 나왔구나’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아쉬운 건 ‘다시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라고. 그는 “최근 들어 운이 좋았는지 좋은 사람과 좋은 작품을 해왔다. ‘마더’도, ‘마인’도. 작품을 할 때마다 ‘이렇게 즐겁게 찍는 게 마지막이지는 않을까’ ‘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며 마음이 안 좋기도 하다. 다음에 또 이런 좋은 기회가 올까 싶어 서운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드라마,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약진에 대해서는 “너무 감사하다. 선배님들께서 길을 잘 닦아주셨다”라며 “나도 저 나이까지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더 잘해야겠다, 더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라고 기뻐했다.​

이보영이 연기한 고아인은 이보영 연기 인생 역대급 ‘쎈캐’다. 이보영은 ‘대행사’를 고아인의 성장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는 “혼자 잘나고, 늘 혼자 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며 “캐릭터가 미워 보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고아인처럼 말하는 걸 시청자가 보면 등 긁어주는 느낌이지 않을까,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이 고아인이 잘되기를 응원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보영은 ‘센 게 아니라 센 척하는’ 고아인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에게 공감하고 짠한 마음을 가졌다. 그는 “고아인도 버티고 있고, 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버틸 거고. (연기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아인과 자신의 싱크로율을 묻는 질문에는 “1도 없다. 적막한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약 먹고 술 먹고 혼자 자는 것도 싫고, 막말하는 사람도 못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닮은 점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고아인을 연기하며 이보영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 의외로 엄마와의 서사였다. 실제 두 아이의 엄마인 이보영은 고아인을 버린 엄마 서은자(김미경 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그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가서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잘 풀어낼까 고민했다. 상처를 극복하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데 도무지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다. 어떻게 딸을 버릴까”라면서 “그런데 엄마가 팔찌를 잡고 있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엄마가 너무 미웠다. 그런데 또 찍으면서 눈물은 엄청 났다”고 연기 비하인드를 전했다.

“하고 싶은 역할이라고 재미 없는 걸 할 수는 없잖아요”

유독 작품에서 전문직 여성을 자주 연기했던 이보영, 사실은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망가지는 것, 밝은 것도 하고 싶은데 (내게서) 그런 게 잘 안 보이나 보다. 그렇게 사연이 많지 않은데”라고 말한 이보영은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어도 대본이 재미없는데 할 수는 없다. 확 꽂히는 대사나 씬이 있으면 그 작품을 택한다”고 자신만의 작품 선택 기준을 밝혔다. 대행사 역시 “재미있어서” 선택했다. 이보영은 “대본도 재미있고, 찍을 때도 너무 재미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못돼 보일까, 소리를 어디까지 질러야 할까. 처음 해보는 연기라서 너무 재미있었다”라고 고아인 캐릭터와 ‘대행사’에 함께하게 된 것에 만족했다. 차기작 역시 전문직에, 부모 복 없는 캐릭터라고 귀띔한 이보영은 “대본을 재미있게 봤다”며 작품 선택 이유를 밝히기도.​

극중 적대 관계였던 조성하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이보영은 “선배님이 악역처럼 나오시지만 악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위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악역처럼 보였으면 미웠을 것 같은데 귀엽게 보였다. 제가 선배님을 좋아해서 그런지. (고아인을) 약 올리고 가는 것도 재미있고 귀여웠다”라고 말했다.

‘대행사’는 오피스물인 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드라마였다. 그 가운데 이보영이 고아인 외에 탐 냈던 캐릭터는 해맑은 조은정(전혜진 분)이었다. 이보영은 “어디서든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던한 사람이 있어야 조직이 환해지지 않나. 엉뚱하고, 약간은 무뎌서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밝은 에너지의 은정이가 예뻐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중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은정의 상황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이보영은 “저희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있어야 돼?’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그런다면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 하지만 일을 하러 나갈 것”이라며 “저희 엄마가 보면서 ‘저렇게 할머니가 다 봐주는데?’라며 서운해 하시더라. (투정 안 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는 유독 연극배우 출신이 많았다. 이보영은 TF팀 멤버 병규와 원희를 연기한 이창훈, 정운선의 연기가 특히 인상 싶었다. 이보영은 “연극배우 출신들이 많았는데, 다들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연기를 해서 재미있었다. ‘이렇게 하겠지’라는 계산에서 벗어난 연기였다”면서 “병수(이창훈 분)와 찍을 때 울컥울컥할 때가 많았는데, ‘상무님 승진 축하드립니다’라는 대사를 리허설을 하는데 너무 리얼해서 눈물이 확 올라오더라”라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이보영은 이창훈에게 “드라이하게 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면서 “날 것을 듣는 게 너무 신선하고 좋았다”고 이창훈의 연기를 칭찬했다. 승진 소식을 듣는 원희(정운선 분)의 연기를 보면서도 같이 눈물이 날 뻔했다고.

“일 쉬게 됐을 때, 간절해지더라고요”

한편 이보영은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대행사’에서 고아인이 과거를 회상했듯, 이보영도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기억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 정말 적성에 안 맞아서 도망치고 싶었고 혼나는 게 무서웠다. 열심히 준비해도 카메라 앞에 가면 얼굴 근육이 맘대로 안 움직이고, 연기가 겁났다”라면서 “그렇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일을 되게 사랑하고, 연기가 재미있어졌다. 시청자들에 제가 만든 캐릭터를 사랑해줄 때 희열도 크고,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잘 버텼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과거와 달라진 자신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을 “견딘 게 아닌, 시간이 지나간 것”이라고 말하는 이보영은 “일을 쉬게 됐을 때, 일이 없어지니 간절해 지더라. 그 다음부터는 현장에서 누가 나를 찾아주는 게 감사하다. 현장에 갈 때 설레고 좋다. 현장에서 진짜 내가 되고,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는 게 감사하다”라며 지금의 배우 이보영이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전했다.

청순한 첫사랑 역할만 들어와 고민이 깊었던 때도 있었다. 한때 밝은 캐릭터가 하고 싶어 잠시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적도의 남자’를 계기로 이보영은 깨달음을 얻었다. ‘적도의 남자’도 청순한 역할이었지만 이 역할은 청순한데 강단 있었다. 수동적이지 않았다. 행복하게 찍었다”라며 “‘적도의 남자’ 이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변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맞는 옷은 분명 있다”라고 말했다.

남편인 배우 지성은 이번 ‘대행사’를 어떻게 봤을까? 이보영은 “재미있다길라 ‘진짜 재밌어?’ 했더니 ‘진짜 재미있어’라고 하더라”라고 반응을 전했다. ‘대행사’ 엔딩 후 지성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보영은 “그러니까요. 처음에 그거 보고 어찌나 빵 터졌는지”라며 웃었다. 지성과는 서로 연기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이보영은 “가까운 사람이 (연기에 대해) 그런 말을 하면 화가 날 것 같다. 작품을 고르는 것도 터치하지 않는다”면서 “연애할 때는 (배우 지성이) 자극이 됐다. 오빠가 되게 열심히 연습하고 연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큰 자극을 받았지만 같이 살면서는, 잘되면 서로 좋은 것 아닌가. 같이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함께 연기한 손나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재벌가 딸이자 광고대행사 상무인 강한나를 연기한 손나은, 연기 데뷔 10년이 넘은 중견배우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작품에서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보영은 손나은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보영은 “(손나은과의 연기는) 너무 좋았다. 잘했고, 열심히 했다. 한나와 싱크로율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인플루언서처럼 화려한 부분도 그렇고. 처음으로 롤이 큰 캐릭터를 맡아 부담이 컸을텐데 준비를 열심히 해왔다.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했다”고 칭찬했다. 고아인과 강한나가 처음 만나는 씬, 강한나가 첫 출근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보영은 “그 씬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공을 들여 찍은 장면이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보영은 고아인을 향한 애정어린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전했다. 이보영은 “(성공 같은) 저런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중요한 건 내 마음의 건강, 내 안이 바로서는 거다. 중요한 건 그런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성공과 인정) 그런 건 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돈시오패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돈에, 성공에 미쳐 자신을 잃어가던 ‘대행사’의 고아인이 많은 시청자의 응원을 받고, 성장하며 따스한 울림을 전한 건 캐릭터를 향한 배우의 애정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감사할 줄 아는 이보영의 진심이 있기에 가능했다. “사람들은 끝나고 일주일이면 잊어버려요”라면서도 자신의 드라마를 인생작으로 꼽아주는 팬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보영, 쿨한 척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 따뜻한 고아인과 닮았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드라마하우스, 제이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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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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