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우인 기자] 블록버스터 영화와의 대결 속 조용히 선전 중인 영화 ‘목격자'(조규장 감독). 배우 정유민은 등장하는 분량은 적지만, ‘목격자’의 시작을 처절한 죽음으로 알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로 데뷔 7년 차를 맞이한 정유민에게 ‘목격자’는 필모그래피를 쌓은 이래 가장 임팩트 있는 작품이자, 정유민의 터닝포인트가 될 작품으로 구전되고 있다.
TV리포트는 최근 떠오르는 배우 정유민을 만났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꿈꿔온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정유민. 나이가 들수록 연예계에 발을 들인 대다수가 이루고 싶은 스타의 꿈에선 멀어지고 있다지만, 정유민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성장할 수 있는 앞으로를 기대하는 배우다.
한 시간이면 넉넉할 거라 생각한 정유민과의 수다는 두 시간도 부족할 만큼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인간 정유민은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듯 수더분하고, 배우 정유민의 자세는 올곧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스태프를 챙기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좋았다. 만나기 전보다 만난 후가 호감인 정유민과 나눈 이야기를 펼쳐본다.
정유민은 지난 2012년 ‘홀리랜드’로 데뷔했다. 이후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하이스쿨’ ‘리멤버-아들의 전쟁’ ‘가화만사성’ ‘구르미 그린 달빛’ 등에 출연했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기간을 합하면 20대의 전체를 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노력한 세월에 비하면 정유민의 인지도는 낮은 게 현실이다.
그런 정유민에게 ‘목격자’는 감사한 작품이다. 비록 극 초반 살인마 태호(곽시양)에게 쫓기고, 발버둥 치다 살해당해 영화에서는 사라지지만, ‘목격자’를 본 관객이라면 윤희원(정유민)의 공포 가득한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 정유민은 ‘목격자’의 신스틸러로 두고두고 회자될 전망이다. 배우에게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평가는 없지 않을까.
정유민은 “‘목격자’에 참여한 배우로서 일단 기분이 좋고, 정말 추운 가을과 겨울이었는데 맨발로 뛴 보람을 느낀다. 성취감도 있다”면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촬영이 고되지는 않았냐”는 질문엔 “분장이 필요 없어질 만큼 자연스러운 멍이 생겨서 좋았다”면서 오히려 카메라를 들고 겨울의 산길을 뛰어야 했던 촬영감독 및 이하 스태프들의 고생을 언급했다.
“작품에서 죽는 연기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죽기 전까지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연기여서 새로웠죠. 분장하는 과정에서의 경험도 특별했고요. 하지만 바닥에 죽은 채 누운 연기를 할 때는 누군가가 저를 건드리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한 컷 찍고 나면 스태프들의 2/3가 제게 달려와서 괜찮으냐고 물어봐 줬어요. 몸은 춥지만, 마음이 따뜻한데 어떻게 티를 낼 수가 있겠어요(웃음)”
‘목격자’엔 이성민 김상호 진경 등 연기파 배우들이 수두룩 나온다. 그러나 정유민이 연기로 호흡한 배우는 곽시양이 유일했다. “아쉬웠을 것 같다”는 반응에 정유민은 “직접 호흡한 장면은 없지만, 선배님들이 촬영 현장에 와서 봐준 적도 있고, 저도 제 촬영 장면이 없는 날 몇 번 가서 봤다”고 말한다.
“처음에 희원이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선배님들이 후반에 연기할 때의 무게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을 스스로에 부여하며 촬영했어요. ‘목격자’가 개봉할 때 선배님들이 저를 보며 ‘고생했다’ ‘잘했다’ 이야기를 해주셨죠. 칭찬을 들으며 감사하면서 많은 감정이 오가 울컥했어요. 시양 오빠도 절 때리는 연기를 할 때 안 아프게 하려고 배려해 주고, 촬영 감독님도 제가 오래 많이 뛰지 않도록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정말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유민은 애초 희원이 아니었다는 사실. 배정화가 연기한 402호 여자 서연 역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다른 역할로 캐스팅됐다. 정유민은 “공포스러운 눈빛이나 분위기를 많이 찾았던 것 같다”며 “하지만 이 영화에서 희원 캐릭터가 단순한 도구처럼 소비될까 봐, 여성 자체가 도구화될까 봐 염려되긴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께 이야기를 드렸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떠올리기 껄끄러운 기억이지만, 정유민은 학창시절 쫓기던 경험을 희원 캐릭터의 공포스러운 연기로 표현해냈다. “실제로 희원과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길 가다가 이상한 사람을 많이 만났고, 도서관에서 쫓아온 남학생도 있었어요. 신체적인 접촉은 다행히 없었지만, 쫓기는 게 트라우마로 남았죠. 밤길이 무서워서 못 다닌 적도 많아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면허를 딴 이유이기도 해요.”
2남 1녀 중 장녀인 정유민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교육자인 어머니 슬하에 평범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연예계에 몸담은 사람도 가족·친척 통틀어 정유민이 유일하다고. 정유민은 “여동생은 유치원 교사로 재직 중이고, 남동생은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쪽 일에 모두 무지하니까 부모님 반대가 엄청났다. 허락받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연기를 하려 한 계기가 궁금했다. 정유민은 “어릴 때 할머니랑 잠깐 살았는데, TV 드라마가 실제 상황인 줄 알았다. 같은 분이 착했다가 악한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직업이 탤런트라는 사실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 순간 TV의 뒷모습에 매력을 느꼈어요. 숫기도 없고 낯도 많이 가리던 제가 갑자기 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죠.”
어마어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어도 정유민은 자신이 걸어온 배우 길에 대해 “다 좋다”고 자평한다. “아주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출연한 작품도 좋고, 배우 개인적으로는 하나씩 땅을 잘 밟고 다진 느낌이 있다. 배운 것이 많은 시간을 쌓아온 것 같다.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고, 한편으로는 버티고 견뎠고, 또 한편으로는 고맙게 잘 지냈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를 덧붙인다.
“고민도 하고, 괜한 걱정도 경험하면서 조금씩 배우 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는 것 같아요. 저라는 한 사람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조급함도 사라졌고요. 걸어온 길도 좋지만 앞으로가 정말 기대돼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다를 수 있지만, 뭔가 조승우 선배님처럼 사람들한테 충격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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