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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이혜미 기자]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에 가려진 숨은 피해자 ‘화협 옹주’의 이야기가 ‘천일야사’를 통해 조명됐다.
4일 채널A ‘타임슬립 천일야사’에선 영조의 딸 화협옹주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조선의 제 21대 왕 영조는 백성을 사랑한 임금으로 검소하고 성실하며 나라의 안정을 우선시 한 ‘성군’으로 기록됐으나 실록에서 주목한 건 오직 왕의로서의 모습으로 아버지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며 비정한 면모를 보인 바.
이날 방송에선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갈등에 가려진 ‘화협옹주’의 숨은 이야기가 공개됐다. 화협옹주는 사도세자와 두 살 터울의 친 누이로 19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영조는 ‘한 줄을 쓰는데 열 줄기 눈물이 흐르는구나. 아, 슬프구나’라는 내용의 묘비문을 남기고, 깊은 슬픔을 표했으나 여기엔 숨은 진실이 있었다.
일찍이 영빈 이 씨가 연달아 네 명의 옹주를 출산한 상태에서 화협 옹주를 낳자 영조는 어린 딸을 외면했다. 무수리의 아들이란 이유로 오랜 시간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영조는 사도세자를 완벽한 군주로 키우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엄격히 통제했다. 당시 영조는 불길한 말을 듣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귀를 씻는 버릇이 있었고 충격적이게도 자신의 귀를 씻은 물을 화협 옹주의 처소에 버리곤 했다고. 이는 화협 옹주에게 큰 상처를 안겼고, 자연히 같은 아픔을 공유한 사도세자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2015년 남양주에서 화협 옹주와 그의 남편 신광수의 합장묘가 발견돼 발굴이 진행된 가운데 무덤에서 발견된 건 바로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이었다. 화협 공주가 자신을 단장하는 데 집중했던 건 ‘몸가짐’을 이유로 사도세자를 질타하는 영조를 목격했기 때문.
영조에 의해 혼례를 올리고 궁을 떠난 화협 옹주는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아버지 영조를 맞이하고자 꽃단장을 했다. 영조는 화협 옹주가 병상에 누운 뒤에야 뒤늦게 딸을 찾았고, 옹주는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영조는 슬퍼하며 묘비문을 썼으나 이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날선 갈등으로 이어졌다. 병세가 심해진 사도세자는 궁녀와 내관 등을 수차례 살해한 결과 뒤주에 갇혀 눈을 감는 비극을 맞이했다.
실록은 양조가 사도세자와 화협 옹주의 죽음을 비통해 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그의 딸은 스스로를 지운 채로 19살 짧은 생을 살았고, 그의 아들은 검은 뒤주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혜미 기자 / 사진 = ‘타임슬립 천일야사’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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