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 검색에서 TV리포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TV리포트=강해인 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또 한 번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며 온기를 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의 틀을 깨는 작업을 자주 진행했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의 작품에서 보편적인 가족의 형태를 해체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제시해 왔다. 그는 상처받은 이들이 함께 아픔을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이 질문은 신작에서도 유효했다. 이전 작품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존재들이 가족으로 거듭나는 걸 보여줬다면, ‘상자 속의 양’에서는 피 한 방울 없는 존재를 가족 안으로 끌어와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였다.
‘상자 속의 양’은 아들을 잃은 부부가 그와 똑 닮은 휴머노이드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를 입양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구성돼 있다. 휴머노이드를 맞이한 이후 상실감을 극복하는 부부, 그리고 다른 휴머노이들과 또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는 카케루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는 각각 기술이 죽은 자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지, 언젠가 도래할 휴머노이드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 묻는다.
영화 속 엄마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와 아빠 켄스케(다이고 분)는 아들의 얼굴을 한 카케루에게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오토네는 아들이 돌아왔다며 기뻐하고, 켄스케는 카케루는 기계이며 죽음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업의 일부라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켄스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마음을 열어간다. 죽은 아들의 잔상만 부유하던 집은 웃음과 활기를 되찾고, 부부도 점차 상실을 극복해 나간다. 여기까지 ‘상자 속의 양’은 첨단 기술이 인간의 상실감을 완벽히 채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중반부 이후 이 기술은 치명적인 단점을 드러낸다. 정확히 말하면, 기술이 아닌 인간이 문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는 카케루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다. 오토네는 아이가 살았을 때 엄마로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 하고, 켄스케는 아들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자 한다. 이 시점부터 카케루는 가족 구성원이 아닌, 부부가 가진 죄책감을 희석시키는 도구로 존재한다. 이런 탓에 부부는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극복하지도 못한 채 과거에 갇혀 버린다.
이들 중 유일하게 성장하는 게 휴머노이드라는 건 섬뜩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는 아들 카케루의 역할을 수행하다가도 종종 지적인 AI로서 부부에게 조언을 건넨다. 아들의 죽음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위로하며 부부의 마음을 흔든다. 이 시점부터는 오토네와 켄스케도 조금씩 현실을 자각하고, 휴머노이드를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쌓아간다. 이런 과정을 보여주며 ‘상자 속의 양’은 죽은 자의 자리를 기술로 대체하는 것엔 한계가 있고, 그 슬픔은 언젠가 인간이 극복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상자 속의 양 이야기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양 그림을 원했던 어린 왕자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다 빈 상자가 담긴 그림을 받고 만족한다. 상자 속에 있는 양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어린 왕자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즐거움과 가치를 말하는 에피소드였다. 이는 로봇이라는 껍질 속에 죽은 존재를 상상해야 하는 영화 속 인물들을 상황과 닿아 있다. 영화 말미에 오토네는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게 카케루가 아닌, 자신이었다고 고백한다. 휴머노이드를 보며 아들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풀어내고 있었다는 걸 자각하는 지점이다.
영화의 다른 서사는 카케루의 성장에 관한 것이다. 그는 우연히 버림받은 휴머노이드들과 만나고, 부부가 아닌 그들을 가족으로 선택한 뒤 은밀히 만남을 이어간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인간에게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 생각하고 치밀하게 탈주를 계획한다. 그리고 오토네와 켄스케가 상처를 극복한 시점에 미련 없이 작별을 고한다. 이때 카케루가 선택한 공동체의 구성원과 그들이 향하는 공간은 흥미롭다. 휴머노이드들은 방황하는 아이는 함께 기계가 전혀 없는 자연으로 향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를 통해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맺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그들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이번 영화는 AI 기술을 향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을 느낄 수 있던 작품이었다. 기술이 인간을 도울 수는 있지만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전보다 확장된 가족의 형태를 중심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그러나 상실을 치유하는 부부의 서사와 독립을 준비하는 휴머노이드의 서사의 연결고리가 약해 보였다. 특히, 휴머노이드가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를 떠나는 것은 인간적인 행동으로 보여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 밖에도 영화가 윤리적인 문제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는 인상도 받을 수 있었다.
AI는 이미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고, 이 기술을 향한 의존도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상자 속의 양’의 카케루 같은 휴머노이드가 10년 뒤면 세상에 나온다는 정보를 얻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휴머노이드가 우리 곁에 서게 되는 그날, 우리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터미네이터’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보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보여준 미래를 만나고 싶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주)NEW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