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프랑스 파리 에펠탑
I 준공 20년 뒤 철거 예정
I 송출용 통신 탑으로 활용
[TV리포트=한하율 기자] 파리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에펠탑’은 1889년 준공되었다. 지난 31일 에펠탑이 준공 135주년을 맞으며 숨겨진 역사에 대해 알려져 관심이 주목되었다.
에펠탑은 앞서 말한 것처럼 1989년 3월 31일에 준공되었다. 프랑스 파이 안나톨 5가에 세워진 철탑으로 건축가의 이름을 따 ‘에펠탑’이라 명명되었다.
에펠탑은 프랑스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에 패한 치욕을 만회하고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워진 철탑이다. 이는 1889년 파리 엑스포에 전시할 예정이었으며 당시 영국이 자랑하는 최신 건물이었던 수정궁과 세인트 판크라스 역을 의식하여 기둥 간의 거리를 115m 늘인 기계 관과 300m 높이로 설계되었다.
프랑스는 에펠탑을 일종의 국가 기술을 과시하는 용도로 세웠기 때문에 당초 20년간 설치했다가 해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 엑스포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박람회였기 때문에 박람회가 열리는 마르스 광장 입구에 전 세계 방문객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건축물로 에펠탑을 선택한 것이다.
공모전을 통해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모집했는데 여기에 공학자 출신으로 철골 구조물을 잘 다루는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 선정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로는 에펠탑의 구상을 에펠이 처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에펠의 동료였던 엔지니어 에밀 누기에와 모리스 코에쉴랭이 처음 에펠탑의 형태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에펠탑에 에펠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에펠 자신이 에펠탑을 짓는데 들어간 공사비 대부분을 직접 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어느 건축가가 자신의 사비를 들여 국가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건물을 만들까. 에펠은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일단 에펠탑을 먼저 완성한 뒤 에펠탑 수익의 독점권을 인정하는 소송을 제기해 3년 만에 투자한 공사비 전부를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펠탑 내부에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명가 중 하나로 꼽히는 토머스 에디슨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높이 324m에 달하는 에펠탑은 1930년 미국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되기 전까지 41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꼽히기도 했다.
현재는 파리의 랜드마크로 꼽혀 그 위세를 자랑하지만, 당시 파리 시민들은 에펠탑을 흉물로 생각했다고 한다. 에펠탑의 철골 구조가 건축 재료로 사용됐는데 당시 철골이 건축 재료로 상용화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철골의 느낌이 적나라하게 그대로 드러난 에펠탑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민들은 강하게 에펠탑의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에펠탑이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는 주장이었다.
에펠탑의 건축가인 에펠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았다. 에펠탑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1층 전망대 아래에 프랑스의 과학자와 수학자를 비롯해 총 72명의 이름을 새겨넣는 등 에펠탑에 대한 시민들의 여론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당초 에펠탑은 박람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기 때문에 20년이라는 시한 기간이 존재했다. 20년이 지난 후 철거를 앞두고 에펠탑이 통신 시설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해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에펠탑은 실제로 지난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육군의 군 통신 중계탑으로 사용됐으며 라디오와 TV 송출용 송신탑으로 활용되어 프랑스 최초의 TV 방송을 송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에펠탑의 역할은 예쁜 건축물로서 프랑스의 랜드마크로 자리한 게 아니라 송신 용도의 송신탑으로서만 자리한 것이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당시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등 현재의 위상은 이 당시 마련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히틀러가 에펠탑에 오기 전에 레지스탕스들이 엘리베이터의 전력선을 뽑아놓아 에펠탑에 실제로 올라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히틀러가 프랑스는 점령했어도 에펠탑은 점령하지 못했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알려졌다.
에펠탑 앞에서 찍은 히틀러의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국가의 상징으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로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필수 관광코스로 파리의 낭만을 대표한다. 프랑스 측은 에펠탑에 일몰 후 정각마다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파리의 밤에 낭만을 더하는데 이와 다르게 조명이 꺼진 후 에펠탑의 모습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벽 3시 이후 에펠탑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후기에 의하면 평소에 웅장하던 에펠탑이 이 시간대에 보면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흉물스럽다고 한다. 에펠탑이 지어지던 당시 지금의 기술력이 없다고 가정해 봤을 때 프랑스 시민들이 철거를 요구한 이유를 조금은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에펠탑의 모방 작품들도 많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1999년 절반 크기로 세워진 에펠탑 레플리카가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2007년 항저우 인근 톈두청에 에펠탑 레플리카를 조성했으며 파키스탄 라호르 인근의 바흐리아에도 모조품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는 에펠 탑을 모방해서 도쿄 탑을 만들었을 정도로 미적 가치는 충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하율 기자 content_2@tvreport.co.kr / 사진=에펠탑 홈페이지, 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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