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우인 기자] 내 가족 혹은 내 주변에서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고민이지만, 드러내기 싫은 치부를 다룬 드라마. ‘그렇게 살다’는 제목에서 주는 평범함 속에 평범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그린 작품이다.
또한 KBS가 아니면 제작되기 어려운 소재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현업에서 물러난 노인이다. KBS이니까 다룰 수 있고, 또한 다뤄야 하는 소재의 드라마가 ‘그렇게 살다’이다.
1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누리동 쿠킹스튜디오에서 진행된 KBS 드라마 스페셜 2019 네 번째 작품 ‘그렇게 살다’ 기자간담회. 연출을 맡은 김신일 PD를 비롯해 정동환과 주석태가 참석했다.
‘그렇게 살다’는 수년째 노인 빈곤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답지 않은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를 그린 드라마다. 지난해 제31회 KBS TV드라마 단막극 극본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신일 PD는 “전직 형사가 퇴직 이후 삶의 위기에 처해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게 주된 스토리”라고 소개했다. 김 PD는 “드라마의 소재는 노인 빈곤을 다루지만, 형식은 범죄 스릴러다. 성억이 범죄를 저지르는데 이것을 은폐하고 밝히려는 장면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덧붙였다.
단만극 출연이 오랜만이라는 정동환은 전직 강력계 출신 형사로 퇴직금, 공무원 연금까지 아들 사업 자금으로 날리고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노인 최성억 역을 맡았다. 치매 노인인 아내와 거리에 나 앉게 된 상황에서 우연히 상가 건물 경비 자리를 소개받게 된다.
정동환은 ‘그렇게 살다’ 출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런 소재의 드라마를 제작해준 KBS에 감사한 마음부터 밝히며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어떤 입장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정통사극, TV문학관을 보여줄 때와 같은 좋은 영향을 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오랜만에 KBS에 와서 일하는 자부심을 느꼈다”면서 “최성억의 이야기는 최성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어떤 덫에 걸리면 누구든 이렇게 될 수 있다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작품과 캐릭터에 애착을 드러냈다.
주석태는 특수 강도를 비롯한 각종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 박용구 역을 맡았다. 대한빌딩 경비 자리를 찾았다가 현역 시절 자신에게 수많은 별을 달아준 ‘악연’을 만나게 된다.
주석태는 “대본을 봤을 때 작가님이 우리 집에 왔다 가셨나 싶더라. ‘그렇게 살다’는 자신의 집에 한 가지씩 보여주기 싫은 비밀, 치부가 있는데, 그런 소스를 모아서 담은 작품인 것 같다. 먹먹했다”며 “성억을 비롯한 인물들은 주의깊게 보면 우리 주위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용구는 그들의 불씨를 점화해주는 허구의 인물이다. 그런 점이 흥미로워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동환은 최성억을 연기하며 연기 생활 거의 최초로 계산을 내려놨다. 그이유에 대해 “자칫 내가 나올까 봐 걱정이 됐다. 최성억은 내가 나오면 안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그래서 감독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목소리, 생각이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철저히 감독의 디렉팅을 받으며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악역 전문 배우로도 통하는 주석태는 어땠을까. 용구는 전과 9범으로 주석태에겐 또 악역이다.
주석태는 “악역에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성이 이를 잡아서 욕구와 이성을 5대 5로 만들어 평범한 사람이 된다. 이때 욕구가 7이 되고 이성이 3이 되면 악인의 접근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용구를 표현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는 주석태. 다만 학창시절부터 존경해온 선배 정동환과 마주하는 일이 그를 흔들었단다.
주석태는 “김신일 감독이 선생님을 더 비참하게 해달라, 아주 그냥 세게 하라고 할 때, 선생님을 보면서 제가 무너뜨린 균형이 다시 맞아지니까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주석태의 악랄한 연기는 정동환에게 큰 보탬이 됐다. 정동환은 “너 때문에 살았어 라고 이야기해줬다. 더 힘있게 괴롭혀달라고 했다. 그것이 우리한테는 좋은 호흡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만족했다.
주석태는 “선생님이 아버지와도 연세가 비슷하신데, 제가 감히 연기 호흡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정말 최고이고 감사했고, 존경한다”라고 고백했다.
끝으로, ‘그렇게 살다’ 어떤 부분을 유심히 봐야 할까.
주석태는 “촬영하면서 철도 건널목에서 안내하는 분들을 만났는데, 우리 드라마에 대해 궁금해해서 알려드렸더니 ‘나랑 똑같네, 나도 경찰이었는데. 저 양반은 공무원이었어. 여기 다 그래’라고 한 적이 있다”며 “그리고 우리 드라마 제목을 보니 ‘그때 그래’라는 이분들의 말이 마음에 와닿더라. 여러분도 드라마를 보고서 제목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정동환도 “경비원들에게 함부로 대해서 어려움을 겪게 하고, 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런 사회적인 일이 있지 않았나”라며 “그들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들의 일이 모두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이고 내 형제들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반성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내 주변 나의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라고 바랐다.
‘그렇게 살다’는 18일 오후 11시 방송된다.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 사진=KBS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