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영화 ‘가려진 시간'(엄태화 감독)이 예상 밖 흥행 부진을 겪고 있다. 개봉 3주 차 평일 48만 명. 개봉 전 11월 가장 강력한 흥행 예상작으로 꼽히며 경쟁작 개봉 스케줄까지 흔들어놓은 작품 치고는 초라한 성적이다. 예매율도 1.4%, 10위권으로 떨어졌다. 30일 개봉하는 ‘미씽:사라진 여자’, ‘잭 리처:네버 고 백’에 스크린을 내줘야 하기에 최종 스코어는 50만 명 전후가 될 전망이다.
신드롬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은 ‘가려진 시간’, 흥행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의 원인은 뭘까. 촛불민심, 영화보다 재밌는 현실이 외부 요인으로 꼽히고 있으나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과 ‘형’이 각각 339만, 1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인 것을 고려하면 흉흉한 시국 탓만 하기엔 힘들다.
‘가려진 시간’의 기존 개봉일은 11월 10일. 11월 17일 치러진 수능 관객들을 잡기 위해 11월 16일로 개봉일을 변경했다. 900만 명을 돌파한 ‘검사외전'(이일형 감독), 540만 명을 기록한 ‘검은 사제들'(장재현 감독)로 증명된 강동원 티켓파워가 교복 부대와 헤비유저인 여성 관객을 움직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검사외전’과 ‘검은 사제들’은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지닌 이미지를 대놓고 활용하는 작품들이다. ‘검사외전’의 붐바스틱, ‘검은 사제들’ 사제복 신드롬은 제작자의 수를 빤히 알고도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관객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가려진 시간’은 강동원의 전작과는 궤를 달리 하는 작품이다. 애당초 강동원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여심을 홀리는 데는 관심이 없는 영화다. 영화 시작 40분 만에 꽃거지 비주얼을 하고 등장한 강동원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엄태화 감독과 강동원 모두 ‘강동원’이라는 이름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화려한 비주얼이 영화의 본질을 망치지 않길 바랐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가려진 시간’이 거둔 성취는 또렷하다. 스릴러, 신파, 사극, 범죄물 등 한 손으로 꼽을 만한 장르로 나뉘는 도식화된 충무로에 환기를 불어넣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거둔 가장 큰 미덕이다. 독립영화나 해외 아트버스터에서나 볼 법한 멈춰진 시간이라는 소재를 80억 원 규모의 한국 상업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용기 있는 배우, 제작진,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멈춰진 시간을 구현한 장면들 역시 탁월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물, 공기, 인물들의 미쟝센은 한국영화는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쉬이 보기 힘든 영화적 환상을 안겼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찬 공기에 흩어진 배우들의 입김, 눈 깜빡거림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조율한 스태프들의 노고와 엄태화 감독의 상상력이 빛을 발했다.
영화는 상업 예술이기에 시도 그 자체만으로는 인정받기 힘든 장르다. 이러한 시도에 많은 관객의 공감이 뒤따랐을 때가 만든 이와 관객들 모두 웃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때문에 ‘가려진 시간’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를 거뒀다. ‘가려진 시간’의 성취와 한계가 보다 풍성한 충무로를 위한 자양분이 되길 바라본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영화 ‘가려진 시간’ 포스터 및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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