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셀린 송 감독이 국내 관객과 만나는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을 연출한 셀린 송 감독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과 ‘해성’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이다.
“12살까지 살았던 한국에서 영화를 개봉해 감명 깊다. 어린 시절 이민을 떠나서 한국에 대해 깊게 알진 못하지만, 봉준호를 비롯해 이창동,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한다.”
■ “아카데미 후보? 이상하게 긴장이 안 된다.(웃음)”
현재 전 세계 72관왕, 212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패스트 라이브즈’. 특히 신인 감독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뤘다. 여기에 ‘오펜하이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를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연출한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극찬을 받아 국내 개봉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수상이나 호평에 대한 무게가 크진 않다. 첫 영화라 그런 거 같다. 이상하게 긴장이 안 되는 게 도움이 된다.(웃음) 세계 각국의 관객들과 영화를 공유하면서 다양한 반응을 들었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제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 하하. 곁에 있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관객이 있었고, 반대로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관객도 있었다. 특히 끊어진 인연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관객을 만났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의 일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몇 년 전 셀린 송 감독은 뉴욕으로 놀러 온 어린 시절의 친구, 미국인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뉴욕에서 온 남편과 어린 시절의 친구 사이에 있던 셀린 송은 마치 다른 차원이 하나로 연결된 것 같은 기이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방식이나 문화, 그리고 언어까지도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속에서 감독은 모든 것을 초월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됐다는 후문이다.
“제 친구와 남편이 저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질문을 통역했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언어와 문화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는 저의 역사와 스토리, 정체성을 해석하고 있단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저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 공간에 있는 듯했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영화가 로맨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평범한 남녀의 사랑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보통의 연애가 아니어도 깊은 대화만으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대상이 누구든 말이다. 우리 인생 자체에 있는 로맨틱함을 담고자 했다.”
■ 서울과 뉴욕에서의 촬영, 셀린 송의 끈질긴 연출 빛을 봤다
아날로그 예술 형식인 35mm 필름으로 촬영돼 특별함을 더한다. ‘나영’과 ‘해성’ 및 그들을 둘러싼 ‘인연’의 관계를 우아하고 섬세하게 전한다. 서울과 뉴욕의 아름다운 풍경에 필름 질감을 더해 여운을 배가시키는 감각적인 비주얼을 완성해 냈다.
“한국에선 더 이상 필름으로 영화를 찍지 않아 현상이 어려웠다. 그래서 매일 촬영을 마치고 저녁마다 필름을 박스에 포장에서 뉴욕으로 보냈다. 조금만 잘못돼도 촬영분이 전부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필름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스태프도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뉴욕에서 섭외한 스태프가 한국과 뉴욕을 오가면서 촬영을 했다.”
영화의 배경인 서울과 뉴욕을 관망하는 것 또한 큰 재미다. 골목과 공원, 거리 등 친근한 정서가 묻어나는 게 큰 특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셀린 송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로케이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후문이다.
“촬영 장소가 스토리가 되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두 주인공이 헤어지던 서울의 골목, 24년 만에 만난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배경이 된 회전목마, 뉴욕의 한 공원, 두 주인공이 헤어지는 골목까지. 의미를 부여했다. 자세히 보면 회전목마가 유리벽으로 보호돼 있다. 실제로 바다 공기를 막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다. 두 캐릭터가 보존된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의미를 회전목마에 부여했다. 로케이션 매니저가 고생이 많았다.(웃음) 파리에 사는 사람에게 ‘당신에게 파리는 뭔가?’라고 물으면, 에펠탑이라고 하지 않듯이 진짜 뉴요커들의 뉴욕, 서울 사람들의 서울을 찾아달라고 주문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연’이다. 이민자의 삶을 겪어온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어온 과거와의 이별. 그 깊이 있는 애도에 어우러진 인연이라는 키워드는 많은 이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선사할 전망이다.
“작은 관계도 깊이를 만들어주는 단어인 거 같다. 한국인들은 ‘인연’이라는 명확한 단어를 알지만, 외국에선 ‘인연’이라는 개념이 없다. 하지만 느낄 수 있고, 느껴 본 적도 있다. 알고 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느낌을 ‘인연’으로 명명하는 영화란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저와 이 영화가 인연인 거 같다. 영화를 만드는 모든 순간이 신났고 행복했다. 제 자신을 깊게 이해해보는 계기가 됐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3월 6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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