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 칸(프랑스)=김수정 기자] 치명적인 능구렁이를 하정우만큼 잘 소화할 이가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영화 ‘아가씨’의 사기꾼 백작은 하정우를 두고 만든 캐릭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맞춤형 캐스팅이었다. 말하자면, 하정우의 천부적 재능이 한껏 발산된 캐릭터다. 김민희, 김태리, 조진웅이 파격적인 변신에 몸을 던지는 동안, 하정우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연기로 박찬욱의 영화세계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아가씨’는 아가씨(김민희), 하녀(김태리), 아가씨의 후견인(조진웅)과 사기꾼 백작이 사랑과 돈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145분 동안 관능적이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 영화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사기꾼은 관객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인물이다. 또, 아가씨와 하녀 사이를 오가며 반전을 조율하는 캐릭터로서도 기능한다.
등장만으로도 주변 공기에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는 하정우는 빠듯한 일정과 시차로 지친 국내 취재진들에게도 단비 같은 존재였다.
■ 다음은 하정우와 만나 나눈 솔직한 일문일답.
-영화제는 잘 즐기고 있나
그런데 우리 영화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비명 지르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정도로 충격적인가? (최)민식이 형은 (‘올드보이’에서) 혀도 잘렸잖아.(좌중폭소) 이 정도면 굉장히 소프트한 영화 아닌가?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들은 감상평은 없나
뒤풀이에서 잠깐 얘기 나누긴 했는데, 거기서 대놓고 비평을 얘기하진 않으니까.
-박찬욱 감독과 첫 만남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하정우에 대해 “귀엽다”는 얘길 자주 하던데
일단 웃기시다. 장난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난 ‘아가씨’의 에필로그가 제일 웃기다. 감독님의 장난기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영화 전반에 감독님이 숨겨 놓으신 블랙코미디가 꽤 많다. 그 지점이 나랑 잘 통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소위 코드가 맞으니까 첫 호흡인데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아가씨’는 촬영 전 여유가 꽤 있었는데, 그때 감독님과 개인적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신뢰도 늘고 친밀감도 늘었지. 감독님은 대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신다.
-가장 고생스러웠던 부분은 뭔가
일단 일본어 대사. 스트레스가 굉장했다. 일본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하니 난이도가 높았다. 후시 녹음을 6회차나 한 건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한 문장의 대사로 2시간 동안 억양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녹음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엉덩이 노출 장면이나, 후반부 대사에서 칸 현지 관객들이 빵 터지더라
웃을 걸 예상한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아가씨’에서 내 마지막 대사는 한국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 대사가 아닐까 싶다.(좌중폭소) 난 개그맨만큼이나 많은 유행어를 만든 배우다. ‘아가씨’의 마지막 대사는 “살아 있네”(‘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사랑한다 XX년아”(‘비스티 보이즈’)를 잇는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팬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가겠지만, 다 함께 나이가 들어 EBS 명작소개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된다면 좋은 추억의 대사로 느껴질 것이다.
-‘아가씨’에도 먹방이 등장한다. 이번엔 복숭아다.
감독님께서 복숭아가 팍 튀길 원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미리 복숭아를 이리저리 만져서 흐물흐물하게 만들었지. 역시나 (과즙이) 잘 튀더라.
-김태리와의 호흡도 굉장했다.
태리가 현장에서 긴장하거나 우왕좌왕하는 걸 단 한순간도 본 적이 없다. 신인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연기 역시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 이후 배우로서나 감독으로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
당장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많다. 특히 태도와 자세에서 달라졌다. 감독님께서 영화를 준비하고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보며 정말 많이 놀랐다. 작은 것 하나 허투루 넘기는 게 없다. ‘아가씨’는 감독님께서 7년 전부터 구상하신 작품이다. 당시에는 영화적으로 풀어낼 실마리가 잡히질 않아 일단 묵혀둔 뒤 ‘스토커’를 찍고 나서 다시 꺼냈다더라. 확신이 100% 차올랐을 때 비로소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대단하지 않나.
-‘추격자’, ‘황해’로 함께 칸 레드카펫을 밟았던 나홍진 감독도 ‘곡성’으로 칸을 찾는다.
안 그래도 ‘곡성’ 언론시사회 날 나홍진 감독과 전화통화했다. 감회가 새롭다. 6년 전 ‘황해’ 언론시사회 끝나고 짬뽕집 방바닥에 앉아서 올라오는 리뷰들을 보며 다 같이 운 적이 있거든. 그때 나홍진 감독이 ‘추격자’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영화에 매달리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곡성’이다. 촬영만 11개월에 준비 기간도 2년 넘었다. ‘곡성’이 잘 돼서 정말 다행이다. 이번엔 일정이 엇갈려서 칸에서 만나진 못하게 됐지만, 한국 돌아가면 ‘곡성’ 꼭 챙겨봐야지.
칸(프랑스)=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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