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배우 정우는 솔직하다.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는 재능은 약에 쓰려해도 없다. 연기도 마찬가지. 장면을 장악하겠다는, 상대 배우를 뛰어넘겠다는 불필요한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덕분에 그는 어떤 역할의 옷을 입든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들어 편안하게 관객을 작품 안으로 인도한다.
영화 ‘재심'(김태윤 감독, 이디오플랜 제작)은 정우의 이러한 담백한 매력이 한껏 도드라진 작품이다. 지방대학 중퇴 출신의 변호사 준영 캐릭터에 사람냄새, 현실의 기운을 불어넣은 건 온전히 정우의 몫이었다. 준영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 현우(강하늘)와 만나 변하고, 변화시키는 이야기 역시 정우의 욕심부리지 않는 연기력이 있었기에 관객에게 오롯이 와 닿을 수 있었다.
“기존 변호사 영화들이 많잖아요. 부러 이를 의식해서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에 큰 비중울 두진 않았어요. 오히려 소시민, 준영이라는 사람의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했죠. 준영은 가족을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변호사라는 옷을 입었을 뿐이죠. 소재인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자체가 무겁잖아요. 실화인 데다, 재목도 재심이고. 관객이 실화에 눌려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할까 봐 최대한 편안하게 연기하려 했어요. 그래야 엔딩의 울림이 클 것 같았죠.”
정우는 매 작품이 숙제라고 했다. 연기 고민도 적지 않다. 데뷔 18년 차, 십수 년간 보내온 단역의 세월들은 긍정의 감정도, 부정의 기운도 함께 남겼다. 영화지 오디션 공고를 따라다니며 막연하게 시작한 배우의 길. 부침 심한 영화계에서 긴 무명 세월의 견딜 수 있었던 건 ‘재심’에서 현우를 믿어주는 준영처럼, 정우를 믿고 기다려준 부산 친구들이라고.
“단역을 오래 했을 때 쌓이는 감정들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작은 것만 보게 되는 경우가 있죠. 덕분에 질책, 자책했던 시간도 많죠. 그나마 안도되는 건 부족한 제 자신을 매 작품 채워가고 있다는 거죠. 불필요한 연기 욕심부리고 싶지 않아요. 대신 열심히 하겠다는 긍정적 연기 욕심은 키우고 싶죠. 저도 제가 과대평가받고 있는 걸 알아요. 자책하고, 채우고, 배우면서 점점 제 자리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힘든 순간마다 믿어준 가족들, 영화 ‘바람’의 주인공인 부산 친구들에게도 고맙죠.”
정우는 지난해 인생 제2막을 열었다. 1월에는 배우 김유미와 결혼, 12월에는 딸을 품에 안은 것. 정우는 결혼 후 인생이 사랑하는 이들 위주로 바뀌고 있다며 웃었다. 앞으로 겪게 될 변화가 두렵기보다 행복하다고.
“결혼하고 나서 바뀐 점이요? 배우로서 가치관보다 인간 정우로서 가치관이 제 위주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 위주로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아빠로서 겪게 될 변화도 기대되고요. 결혼하니 행복해요. 친구,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결혼이 주는 행복감이 굉장해요.(웃음)”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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