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어떤 옷, 어떤 장르를 입혀놔도 그럴싸하다. 날카롭다가도 능글맞고, 거칠다가도 매끈하다. 배우 이석 얘기다.
2008년 뮤지컬 ‘빨래’로 데뷔한 이석은 2012년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시작으로 극단 간다에 합류했다. 이후 공연 ‘유도소년’, ‘올모스트 메인’ 무대에 서며 대학로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성실히 연기 내공을 쌓은 이석은 영화 ‘해무’를 통해서는 대학로를 넘어 충무로로도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강남 1970’으로 처음으로 이름이 있는 배역을 맡고 ‘루시드 드림’으로는 조연까지 올라섰다.
‘루시드 드림’은 대기업 비리 고발 전문 기자 대호(고수)가 3년 전 계획적으로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루시드 드림을 이용, 감춰진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아 범인을 쫓는 기억추적 스릴러다. 흥행 성적은 아쉽지만 한국영화 최초로 자각몽을 다뤘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이석의 존재감도 빛을 발했다. 그는 ‘루시드 드림’에서 최대호(고수)의 아들을 납치하는 악역 유상만 역을 맡았다. 차갑고 서늘한 눈빛,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는 비아냥거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카리스마, 고수와 고강도 액션까지 선보였다.
“감독님께서 처음엔 우악스럽고 덩치 큰 배우를 원했어요. 하지만 제 오디션을 보고 나서 캐릭터 방향성을 바꿨대요. 배우는 그런 순간 기분 좋거든요. 친한 후배 배우랑 같이 오디션을 봤거든요. 그 녀석에겐 ‘야, 무슨 준비야. 편하게 해. 힘주지 말고. 감독님 부담스럽게 하지마’라고 조언해줬는데 정작 저는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봤죠.(웃음) 현장에 있던 TV리모콘을 칼 삼아 액션 연기까지 보여드렸으니. 으하하.”
이석이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내디딘 건 ‘해무’부터였다. 영화에 대한 부푼 기대로 뛰어든 ‘해무’는 예상 밖의 고난을 안겼다. 비바람을 맞으며 배 위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조선족을 연기했지만 존재감은 미비했다. 자존감이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때마다 힘을 준건 간다 출신의 선배 이희준이었다.
“엄청난 무기력감에 빠졌어요. 오죽했음 자는 장면에서 연기가 아니라 진짜 잠을 잤다니까요. 제작자 봉준호 감독님이 오셔서 깨우셨으니 말 다했죠.(웃음) (이)희준이 형이 제가 고생하는 걸 보며 처음엔 ‘내가 힘들 거랬지’라며 놀렸지만, 나중엔 현장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으하하. 큰 도움 됐죠. 형이 놀릴 때마다 ‘형, 저 너무 행복한데요?’라고 애써 웃었죠.”
‘해무’로 바닥친 자존감은 오히려 기회가 됐다. 잠시 연기를 접고 제주도로 건너가 3개월간 숨어 지내려고 했던 이석은 ‘강남 1970’ 제비 역할로 오디션을 보게 됐다. 자신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때니 평소보다 더 완벽히 준비했다. 덕분에 영화에서 처음으로 단역이 아닌 이름이 있는 배역을 따냈고, ‘루시드 드림’이라는 터닝 포인트까지 얻게 됐다.
“예전엔 제가 열심히 공연하면 좋은 작품이 제게 올 거라고 믿었거든요. 조용히 있어도 작품이 먼저 찾아와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것도 틀린 건 아니지만, 제가 부지런히 찾아다닌 만큼 기회도 많아지더라고요. 바람이 있다면 ‘루시드 드림’이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죠.”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는 서울예대 만학도인 삼촌의 조언으로 배우의 꿈을 품게 됐다. 당시 그의 연기 스승은 배우 김희원이었다.
“호프집에서 알바도 하고, 웨이터도 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뭘 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삼촌이 서울예대 사진과에 뒤늦게 입학했는데, 희원 형님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죠. 삼촌이 소개해줘서 희원이 형한테 연기 레슨을 받았어요. 그게 벌써 16년 전이죠. 언젠가 현장에서 형님과 만날 것을 꿈꿔요.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죠.”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원앤원스타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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