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배우 박병은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차갑고 단정한 첫인상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세상 이런 능구렁이가 없다. 느물거리는 넉살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4차원 개그로 사람들을 웃기더니 혼자 있는 시간엔 전국 방방 곳곳을 다니며 낚시로 마음을 달랜다.
안양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여러 영화와 CF를 거치며 연기 내공을 쌓은 그는 영화 ‘아이들’, ‘연애의 온도’, ‘몬스터’ 등의 작품을 통해 점차 대중에게 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에 카와구치 역으로 출연해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며 천만 관객에게 박병은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영화 ‘원라인'(양경모 감독)을 통해서는 상업영화 첫 주연을 맡았다. 정작 본인은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나는 매작품 발전하려 노력한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나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지만 박병은의 진가를 보다 많은 분량과 관객에게 알릴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원라인’이 지닌 의미를 무시하긴 힘들다.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 중에 그 누구도 주인공만을 욕심 내는 배우는 없어요. 물론 배우를 처음 시작할 때 다들 주인공을 꿈꾸죠. 하지만 상업영화만 영화가 아니고, 주인공만 배우가 아니란 말이에요. 독립영화를 대하는 마음이나 상업영화를 대하는 마음이나 똑같아요. 물론, 독립영화 할 때는 소고기 회식은 꿈도 못 꿨지만 카메라 앞의 마음가짐은 달라진 게 없어요. 분량이 적더라도 영화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 아닌가요.”
‘원라인’은 대학생 민재(임시완)가 베테랑 사기꾼 장과장(진구)을 만나 신종 범죄 사기단에 합류해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신분 등을 조작해 은행을 상대로 대출 사기를 벌이는 ‘작업 대출’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쉽고 경쾌하게 풀었다. 개성 강한 캐릭터 안에 녹아든 은근한 유머도 돋보인다.
박병은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행동파이자 돈에 대한 야심으로 가득한 박실장을 연기했다. 그는 표정 하나, 디테일한 손짓 하나까지 세밀하게 연구하며 전에 본 적 없는 악역을 탄생시켰다. 영화 속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다이어리를 늘 손에 들고 다닐 정도의 혼연일체 열정이었다. 과거 ‘몬스터’ 출연 당시에는 의상 리포트를 써 감독에게 제출했을 정도였으니, 작품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어느 정도인지 미뤄 짐작 가능하다.
“외모적으로는 권력의 상징인 반뿔테 안경을 꼈죠.(웃음) 온몸으로 ‘나 깡패 아니야’라고 말하는 번듯한 올림 머리도 했고요. 저는 한 캐릭터를 맞이하기에 앞서 그를 둘러싼 전사, 모든 가능성을 상상해 봐요. 박실장은 권력과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잖아요. 배운 건 없고 머리는 좋고 싸움도 곧잘 하고. 시장 곳곳을 다니며 떼인 돈 받아주러 다니다가 분명 경찰, 검찰에게 불려 다녔을 거고 돈보다 더 큰 힘을 목도했겠죠. ‘원라인’에서 돈과 권력 앞에 가장 솔직한 사람은 박실장 아닌가요. 다들 한발 빼잖아요. 이런 식으로 이 인물의 종착점이 어딜지 만들어갔죠.”
박병은을 얘기할 때 낚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그야말로 낚시광이다. 낚시의 ‘낚’자만 꺼내도 얼굴에 화색이 돌며 어깨가 들썩이니 말 다했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물가로 향한다. 몸과 손톱은 지저분해지지만 마음에 깃든 앙금, 스트레스를 씻겨주는 것이 바로 낚시란다.
“‘아이들’ 촬영할 때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괴로웠어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몽을 꿨죠.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일조한 게 바로 낚시예요. 얼마 전 tvN ‘인생술집’ 녹화를 했는데 김준현 씨도 보통 낚시광이 아니더라고요. 어마어마한 이력과 실력의 소유자입니다. 저수지, 떡밥, 미끼 얘길 하다 오전 6시까지 녹화했어요.(웃음) 조만간 함께 낚시 가기로 했죠.”
박병은은 동료 배우 가운데에도 낚시광이 많다고 했다. 몇 해 전 충주댐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석규, 이덕화, 구본승, 중앙대 후배인 김래원 역시 학창 시절 낚시 마니아로 유명했단다. 최근엔 낚시TV에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모습을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임)시완이, (박)종환이랑 낚시 간 적이 있는데, 어후 다들 재밌어하더군요.(좌중폭소) 시완이랑 종환이도 한마리씩 잡았죠. 그때 낚싯대를 물고기한테 뺏겨서 어찌나 놀랐는지.”
오정세와 함께 프로필을 들고 영화사를 전전하던 그는 이제 충무로에서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확실히 구축했다. 하지만 배우는 마흔부터. 이제 시작이란다.
“대학 형들 중에 지금도 오디션 보러 다니는 배우들이 많아요. ‘너, 무슨 영화 들어간다며. 조단역 오디션 끝났니’라고 물어보는 형들이 지금도 많다고요. 그럼 전 ‘영화사 주소 알려드릴게요. 그 캐릭터는 뭘 준비하면 좋아요’라고 팁을 주기도 하죠. 저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거든요. 친구들이 유명한 감독님이랑 술 마시고 있다고 하면 ‘나도 갈까?’라고 눈치 없이 물어보기도 하고, ‘암살’ 이후에도 오디션 봤다니까요. 주연을 했다고 해서, 배역이 커졌다고 해서 달라질 건 하나 없어요. 여든이 될 때까지도 배우고, 채워야죠.”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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