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 칸(프랑스)=김수정 기자] 2009년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과 묘한 분위기를 풍기던 남자. 이국적인 비주얼과 신비로운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던 유태오는 이후 한국과 태국, 베트남, 중국,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으나 강렬한 ‘한방’은 없었다.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그가 러시아의 전설 빅토르 최가 돼 칸영화제를 찾았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는 옛 소련의 전설적 가수이자 한국계 러시아 스타인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한국 배우 유태오는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최를 연기했다.
빅토르 최 역의 경쟁률은 2000대 1. 유태오는 평소 절친한 영화 ‘하나안’의 박루슬란 감독으로부터 ‘레토’의 오디션 소식을 접한 뒤 셀카 사진 한 장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에게 보냈다.
“사진을 보내고 일주일 뒤 영상을 보내란 연락이 왔어요. 러(시아)한 느낌(?)이 나는 집 주차장에서 기타 치는 영상을 보냈더니, 일주일 뒤에 모스크바로 초대받았어요. 그곳에서 4시간 동안 오디션을 봤어요. PD님이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데 제가 붙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느낀 빅토르 최와 그의 음악에 대한 감상을 전했는데 그 부분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았어요. 독일에서 나고 자란 저의 성장과정과 빅토르 최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유럽의 아시아인이라는 감수성, 문화적 조건이 비슷하잖아요. 묘한 멜랑꼴리가 있거든요. 빅토르 최의 음악에서 제가 겪은 멜랑꼴리를 느꼈어요.”
무명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발탁해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현장에서 유태오가 의지할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지난해 8월 촬영 도중 운영 중인 극장의 공금횡령 건으로 체포된 후 가택 구금 상태다. 감독의 구속은 그가 전작(‘스튜던트’)에서 러시아 정교를 비판하며 푸틴 정부에게 밉보인 것이 진짜 이유라는 분석이 따른다. ‘스튜던트’는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이기도 하다.
“마지막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체포됐어요. 정말 머리 잘린 미친 닭이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기분이었어요. 혼란스럽고 힘들고 히스테릭했죠. 누굴 믿고 가야 하나. 태국, 베트남 영화도 찍었는데 늘 김칫국만 먹고 별 반응도 없고, 늘 힘들었거든요. 이제야 집중 받을 수 있는 좋은 역할을 받았는데 시네마의 신들이 이 기회마저 뺏어가는 것 같았죠. 나는 그냥 무명 배우, 생활연기자로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 싶었어요.”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을 연기한 탓에 부담감도 컸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유태오 연기에 반신반의했다고. 하지만 칸영화제에서 러시아 취재진으로부터 “우리 영웅을 연기해줘 고맙다”라는 극찬을 받았단다.
“러시아 분들에 제가 먼저 다가와서 ‘정말 고맙다’라고 해주셨어요. 솔직히 ‘네가 감히 우리 영웅을 연기해?’라는 반응이 있었거든요. 제가 더 감사하더라고요. 저는 제 연기 빈틈이 보이거든요. 작품이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감독님 없이 피눈물 흘리며 작품을 완성시켰거든요.
칸(프랑스)=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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