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배성우가 충무로에서 갖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정극과 희극을 오가며 그 어떤 장르에서든 자신만의 고유한 기운을 풍긴다. 배성우는 이를 두고 ‘영리한 자기 복제’라고 한다. 영화 ‘안시성’에서는 이 영리한 자기 복제를 넘어, 시나리오의 빈틈을 채우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안시성’은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위대한 승리로 전해지는 88일간 안시성 전투를 그린 영화. 한국영화 최초로 시도된 고구려 액션 블록버스터다. 안시성과 성주 양만춘에 관한 단 3줄뿐인 기록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배성우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조인성) 곁을 지키는 부관 추수지를 연기했다. 자칫 기능적으로 소모될 수 있는 캐릭터였지만 배성우 특유의 위트와 인간미가 더해지며 감칠맛 넘치는 인물로 재탄생했다.
순제작비 185억 원. 배성우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영화인 ‘안시성’에서도 제 존재감을 드러낸 배성우는 ‘라디오 스타’로도 한차례 증명된 입담을 인터뷰 내내 뽐냈다.
■ 다음은 배성우와 일문일답
-추수지는 전형적인 듯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성주에게 ‘요즘 제 말 안 들으세요’라는 대사는 배성우이기에 가능했던 대사다. 인물을 어떻게 구축했나
추수지 캐릭터를 저한테 제의를 주셨다는 것은 조금은 다른 느낌, 배성우만의 느낌을 원하셨다는 것일 텐데. 시나리오는 조금 더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었다. 신선하지 않은 느낌의 대사도 있었고. 내가 캐스팅된 이상 내가 줄 수 있는 재미를 주고자 노력했다.
-같은 고민을 조인성도 했을 것 같다. 일반적인 장군 이미지에 부합하는 캐스팅은 아니니까.
맞다. 익숙한 느낌의 장군과 조금은 다르지. 우리가 택한 느낌은 조인성과 배성우의 실제 관계를 역할에 그대로 녹이자는 거였다. 계급은 조인성이 더 높은데 나이는 내가 더 많은 그런 느낌. 군대로 치면 장교와 하사관 관계랄까. 말투도 조금 더 일상적으로 바꾼 지점도 있고.
-양만춘, 추수지의 관계가 영화 전체에 활력이 됐다.
대본리딩이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박)병은이 같은 경우는 웃겨보려고 충청도 사투리를 하고.(좌중폭소) 백제에서 용병 데리고 온 것도 아닌데. 백제 낚시꾼이냐고 놀렸지. 처음에는 조금 더 실험적으로 해보다가 감독님께서 ‘제발..’이라고 하셔서 참았다. 으하하. 나는 이름이 추수지니까 ‘수지예요’라는 애드리브도 해보고. 영화는 많이 정제된 거다. 일상 장면에서마저 힘이 많이 들어가면 액션과 낙차가 없고 지루할 것 같았다. 부지런히 뛰는 스트라이커도 있지만, 느긋하게 있다가 갑자기 돌변하는 선수가 무서울 수도 있잖나. ‘안시성’ 팀원들은 모두 그런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싸움 잘하는 꿀벌, 오소리랄까.(좌중폭소)
-전투신이 굉장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은데.
날씨가 가장 힘들었다. 너무 덥고 너무 춥고. 먼지도 일부러 만들어서 뿌렸는데, 이거 실례 아닌가요.(좌중폭소)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하는데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강원도 분들도 촬영장 오셔서 놀라더라. ‘이런 바람은 없어요, 처음 봐요’라면서.
-‘라디오스타’에서도 느껴졌지만, ‘안시성’ 팀의 현장 분위기만큼은 최고였을 것 같다.
정말 돈독했지. 다들 가벼운 친구들이라서 쉽게 감을 수 있었다.(웃음)
-조인성과는 ‘더 킹’에 이어 두 번째다.
인성이는 어릴 때부터 경력을 많이 쌓아온 친구라 주연이란 자리가 생소하진 않았겠지만, 전형성을 깬 캐스팅을 영리하게 풀어가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아무래도 ‘더 킹’에 비해서는 기댈 곳이 부족했잖아. 제작비도 훨씬 크고. 현장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개봉 이후 남주혁에 대한 호평이 많다. 캐스팅 당시만 해도 우려가 많았다. 선배로서 현장에서 조언해준 부분이 있을까.
배우들끼리 현장에서 무슨 얘길 하겠나. 정치, 경제, 세계평화에 대한 얘길 주로 하긴 하지만 연기 얘기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배우로서 다른 배우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건 건방진 것 같다. 남주혁은 현장에서 준비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더라.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했다.
-영화 ‘오피스’ 당시 인터뷰에서 “전성기 임박”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계속 임박이었으면 좋겠다.(웃음)
-작품 편수가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자기복제를 할 수밖에 없다. 필모그래피가 쌓이면서 자연스레 고민도 늘텐데.
어떤 작품이든 어느 정도의 의미는 필요하다고 본다. 재미만 100% 추구하면 100% 재미없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가책이 느껴지고 허무하더라. 그 안에 분명한 의도와 의미가 있어야 재밌는 거다. 자기복제도 마찬가지다. 영리하게 선택하려 한다. 작품 자체가 ‘배성우 이미지’를 원하는 경우, 그 안에서 내 고유의 이미지를 영리하게 복제하려고 한다.
-‘안시성’은 그 복제와 계산이 잘 된 케이스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걱정했던 부분이다. ‘지난 작품에서 먹혔던 거니까 또 해볼까’라는 마인드였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작품 전반을 생각하며 잘 계산해야 한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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