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음악, 감동, 그리고 발견. 영화 ‘과속스캔들’, ‘써니’로 따뜻한 인간미와 기막힌 음악 선곡, 그리고 새로운 배우의 발견이라는 성과를 거둔 강형철 감독은 ‘스윙키즈’로 제 장기를 200% 발휘했다.
영화 ‘스윙키즈'(안나푸르나필름 제작)는 1951년 한국전쟁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포로들이 댄스단을 결성해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뮤지컬 ‘로기수’를 원작으로 한다. 도경수, 박혜수, 자레드 그라임스, 오정세, 김민호가 출연했다.
강형철 감독은 한국전쟁이라는 가장 슬픈 역사와 탭댄스라는 신나는 소재의 이질적 조합을 성공적으로 엮어냈다. 절로 발을 구르게 하는 리듬감과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한데 담아내며 아이러니한 슬픔, 아이러니한 흥겨움을 전한다.
영화는 150억 원 제작비 대비 조금은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 관객의 평가만큼은 후하다. 강형철 감독은 “극장 문을 나설 때까지 잔향이 짙은 영화가 되길 바란다. 가장 행복했고, 소박했고, 또 행복했던 스윙키즈는 역사의 승리자다. 이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 다음은 강형철 감독과 일문일답
-원작 뮤지컬 ‘로기수’를 보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춤 영화가 해보고 싶었고, 평소 이념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내 관심사에 딱 맞는 소재였다.
-이념 문제에 관심을 둔 특별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는 없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할머니 손에서 컸거든. 할머니는 남편 잃으시고 사 남매를 서른 살 나이에 책임지셨다. 재능이 많은 분인데, 일찍 인생이 정해져 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스윙키즈’의 양판래처럼 말이다. 새터민, 이민자 문제에 대한 관심도 많다.
-해보고 싶던 춤 영화를 만들어보니 어떻던가.
춤은 감정을 표현하는 은유다. 보통 영화에서 대사로 표현하는 걸 춤 영화에서는 춤으로 말하는 거다. 덕분에 촬영 난이도가 높았다. 얼굴 클로즈업 대신 발을 클로즈업해야 하는 식이다. 탭댄스이다 보니 박자도 맞아야 했다. 후반작업에서 정말 할 게 많았다. 그야말로 소리 대잔치인 영화였는데, 음악에 맞춰 재편집한 경우도 많았고 이펙트도 중요했다. 모든 후반 작업이 유기적으로 진행됐다.
-선곡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해놓고 들어갔나. 정수라의 ‘환희’,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 선곡이 눈에 띄었다.
언급한 두 곡은 곡을 먼저 정해놓고 가사에 맞는 장면을 구상했다. 특히 ‘환희’ 장면은 전쟁통에서도 춤추고 싶은 청춘들이 춤으로 자존심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총칼을 들 것 같은데 춤대결을 펼치는 게 귀엽고 어이없잖나. 뮤지컬적인 실험이었다.
-비틀즈의 ‘Free As A Bird’는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비틀즈 노래 원곡 그대로 삽입돼 화제였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될 걸 예상했나.
시나리오 때는 무책임하게 써놨지.(웃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비틀즈는 돈을 싸들고 가도 허락 안 해준다는데, 존 레논 쪽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좋게 읽었던 것 같다. 구체적 저작권료는 모르지만 억 단위다.
-도경수 얘길 안 할 수 없다. 캐스팅 단계에서 반대가 많았다.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스타보다 내가 원하는 배우를 쓰고 싶었다. 이건 내 전작들에서 증명해왔던 거니까 자신 있었다. 제작사 대표가 처음부터 커버 쳐줬지.(웃음) 도경수가 없었으면 ‘스윙키즈’도 없었다. 큰일 날뻔했다.
-도경수는 어떤 사람이던가.
내가 만난 배우들은 모두 현명하고 똑똑하다. 도경수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향기나는 인성을 갖고 있다. 타고난 것 같다. 엑소 스케줄 때문에 서울과 삼척을 왔다갔다 하면서도 피곤하다고 인상 한 번 안 쓰더라. 게다가 고기도 잘 굽고 요리도 잘한다.(웃음) 좋은 친구가 한 명 생긴 것 같아 좋다.
-배우로서 감탄했던 순간도 있을텐데.
모든 컷에서 ‘우와’가 절로 나왔다. 경수가 촬영 전에 음악을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하더니 ‘이 음악 미쳤다’라고 자기도 모르게 내뱉더라. 내가 원했던 반응이거든. 도경수가 내가 동기화돼서 찍은 영화가 ‘스윙키즈’다. 마치 블루투스처럼. 고맙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동굴 장면에서는 미묘한 균형이 중요해서 일곱 테이크 이상 촬영했는데, 힘들다고 하기는커녕 ‘어, 재밌다’라고 하더라. 오케이컷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진정으로 즐기는 눈치였다.
-박혜수는 드라마에서 아쉬운 연기력을 보여줬는데, ‘스윙키즈’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호연을 펼쳤다. 양판래의 씩씩하고 단단한 성품을 그대로 닮은 것 같더라.
강단 있는 친구다. 어린 나이에 노래가 하고 싶어 ‘케이팝스타’에도 나가고, 꿈을 이뤄나가려고 나아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 모습이 양판래와 닮았다. 연기는, 제작진에게는 신인을 캐스팅한 이상 그들이 잘 뛰어놓을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게 있다면.
시나리오와의 매치가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좋은 눈을 가진 배우면 더할나위 없이 좋고.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배우라면 더 좋다. 시나리오 속 대사를 진짜 자기 말처럼 하는 배우 말이다. 차태현 씨가 그 좋은 예다.
-도경수는 좋은 눈을 가진 배우다.
도경수의 눈은 대사로 직접 표현하지 않고 ‘들켜지는’ 은유가 가능한 눈이다. 표현 에너지가 큰 눈이라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들켜지는 눈이다. 감정이 삐질 삐질 나오는 눈이지.
-중반부 이후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순간 ‘춤 영화’로서의 리듬감이 떨어진다.
우리 영화는 처음부터 반전(反戰) 영화였다. 전쟁과 춤이 싸우는 또 다른 전쟁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 초반 인물들이 춤을 추지만 그 바닥은 살얼음판이었던 거지. 이념이 순식간에 쓰나미처럼 들어왔다는 걸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평화로웠던 일상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이념 전쟁을 말이다.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너무 어이없이 떠나보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을 구상 중인가.
잡념은 떠도는데 하나로 모아지는 뼈대는 없다. 최근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 영화, 혹은 배우가 아주 적게 나오는 대사가 아예 없는 영화도 고민 중이다. 은유에 꽂혀 있거든. 혹은 지구를 지키는 SF영화도 생각 중이도, 음악영화도 고민 중이고. 아직 딱 정해놓은 차기작은 없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영화 ‘스윙키즈’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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