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예측불가한 스릴러. 장항준 감독이 영화 ‘기억의 밤’ 시나리오를 매만지며 수천번을 마음에 새긴 목표였고, 결국엔 이를 해냈다. 9년 만에 친정인 충무로로 돌아온 장항준 감독은 ‘기억의 밤’으로 스릴러 장인으로서 능력치를 최대로 발휘했다.
‘기억의 밤’은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김무열)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강하늘)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 사건의 진실을 담은 작품.
이야기의 출발은 합정동의 한 술집에서 나눈 지인과의 수다였다. 장항준 감독은 지인의 사촌 형이 한 달간의 가출 뒤, 어딘가 묘하게 달라져 돌아왔단 얘기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릴러라는 그릇은 정해졌고, 그 안에 어떤 음식을 담을지 고민했죠. 저는 우리 각자가 모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돼 있다고 믿어요. 작게나마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는 거죠. ‘기억의 밤’에서 형과 동생도 그런 셈이죠. 그저 슥 스쳐지나가는 인연일지라도 엉킨 실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 인연들. 그걸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반전 이후, 이 꼬이고 꼬인 실을 풀어나가는 것은 ‘기억의 밤’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영화 중반까지 뿌려놓은 단서들을 충격적인 반전 이후 야무지게 거둔다. 무려 1년간 공들여 시나리오를 작업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기억의 밤’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IMF라는 시대적 배경을 영화의 중요한 설정으로 끌어안았다는 것. 장항준 감독은 가족의 해체, 결핍을 그리는 과정에서 IMF는 꼭 필요한 소재였다고 말한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TV에 나와 연설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조만간 거리에 자동차가 사라지고 우리는 암흑 속에서 살 것이라고. 물론 굉장히 빨리 위기에서 탈출했지만 상처까지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요. 중산층이 몰락했잖아요. 장애를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죠. 각자의 가정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 IMF예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야기죠.”
스포일러가 돼 자세히 설명할 순 없겠지만, 영화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등장한다. 재밌는 것은 영화를 촬영했을 당시엔 박근혜가 대통령이었던 상황. 후반 작업으로 수정한 것이냐고 묻자 장항준 감독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신기하게도 시나리오 작업했을 때부터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설정으로 썼어요. 그땐 박근혜가 대통령이었을 땐데 말이죠. 왠지 모르게 문재인 (당시)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았어요. 장미 대선, 탄핵, 촛불 정국 이전인데도 말이죠.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웃음)”
장항준 감독은 차기작도 스릴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기억의 밤’으로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100% 해소되진 못했단다.
“정통 스릴러를 해보고 싶어요. 물론 영화가 될 거고요. 드라마하면서 돈 많이 벌었어요. 아버지가 ‘드라마 돈 많이 주던데 계속하면 안 되냐’라고 하시는데, 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긴 싫어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작업하고 싶어요. 일 외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작품만 생각할 수 있는 작업. ‘기억의 밤’이 딱 그랬어요. 물론 강하늘, 김무열이라는 엄청나게 훌륭한 인성의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요.”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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