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영화 ‘시인의 사랑’의 김양희 감독은 배우 정가람에 대해 “피사체로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극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정가람은 이 작품에 해사하고 말간 얼굴로 등장해 존재만으로도 남다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순진한 듯, 불안한 듯, 신비로운 듯, 독기 품은 듯 시시각각 변하는 쉽지 않은 캐릭터를 정가람은 특유의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력으로 돌파했다.
지난해 영화 ‘4등'(정지우 감독) 정가람의 등장은 그해 충무로에서 가장 신선한 사건 중 하나였다. 실제 수영선수라 해도 믿을 만큼 완벽한 외모는 물론, 정형화되지 않은 투박한 연기는 극이 리얼리티를 높였다.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은 정가람은 ‘4등’으로 제53회 대종상영화제와 영화기자협회가 주최하는 2016 올해의 영화상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정가람의 두 번째 영화인 ‘시인의 사랑’은 그의 배우로서 가치에 느낌표를 찍는 작품이다. ‘시인의 사랑’은 인생의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랑을 맞닥뜨린 시인(양익준), 그의 아내(전혜진)과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가람은 어느 날 갑자기 시인의 앞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소년을 연기했다. 자칫 빤한 상투극, 퀴어물로 빠질 수 있는 소재지만 김양희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세 배우의 묘한 시너지가 전에 본 적 없는 작품을 탄생시키며 호평받았다.
“영화가 어떻게 완성될지 그 분위기가 궁금했어요. 무엇보다 소년은 저랑 비슷한 점이 많은 인물이거든요. 저 역시 막연하게 연기가 하고 싶어 밀양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소년도 제주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상경하잖아요. 소년이 어떤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을지, 서울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심정이 어땠을지 너무나 잘 알겠더라고요.”
정가람은 ‘시인의 사랑’에서 양익준과 남다른 브로맨스를 펼쳤다. 사랑과 연민, 그 어딘가에 놓인 감정의 파고가 두 사람의 탁월한 연기력을 타고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처음엔 ‘이 시인이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을 거예요. 그러다 시인과 함께 곶자왈을 산책하면서부터 감정이 생겨났을 것 같았죠. 처음엔 시인을 향한 소년의 감정을 어느 선까지 잡아야 하나 갈피를 못 잡았는데, 곶자왈 산책 장면에서부터 묘하게 풀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양익준 선배도, 저도 느끼는 대로 연기했어요.”
정가람은 스무 살 때 밀양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친구 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맨몸으로 부딪혔다.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패스트푸드, 편의점, 전단지, 물류창고 등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오전 다섯 시 첫차 타고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가며 배우의 꿈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고된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단단해졌다.
“마냥 연기가 하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남들보다 끼도 없는 것 같아 한없이 자존감이 낮아진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연기에서 바로 티가 나더라고요. 저라도 저를 믿어주기로 했죠. 쥐뿔도 없지만 묵묵히 믿으면서 연기 공부를 했어요.”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예답게 차기작도 줄줄이다. 정가람은 ‘악질경찰'(이정범 감독)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독전'(이해영 감독)의 촬영과 ‘기묘한 가족’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복잡한 생각보다, 내 앞에 놓인 오늘을 최대한 열심히 살자가 모토예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절실했던 그 마음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해요.”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