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은정 기자]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기준을 찾기도 정답을 단언하기도 어려운 질문이다. 약 90분간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있다. 바로 연극 ‘렁스’다. 작게는 사회부터 넓게는 지구까지 규모를 바꿔가며 인간의 행동 및 태도와 영향력, 그리고 이에 따른 고찰을 이어간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다. 여자의 말에 한 걸음 물러나 주며 사랑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그 남자의 이야기를 성두섭이 펼쳐냈다.
배우 성두섭은 지난 5월 9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개막한 연극 ‘렁스’에 출연하고 있다. ‘렁스’는 사랑과 결혼, 임신과 유산, 이별 등 삶의 중요한 순간에도 그들의 선택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두 사람의 인생과, 긴 시간을 돌아 마침내 ‘세 사람’이 된 사랑을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그린다. 개인의 선택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있는 이 시대 관객에게 시의성 강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 ‘렁스.’ 성두섭에게 종연을 앞둔 소감을 묻자 “늘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시간이 길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방 공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렁스’는 텍스트에 집중된 극이다. 방대한 양의 대본을 처음 받고도 부담감보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그는 “주제나 이야기도 그렇고 이 작품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작품성을 극찬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커플의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출산, 환경 더 나아가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을 고민하게 하는 근본적 철학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배우로서 무엇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을까.
“끊임없이 대화하는 두 사람이 중점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대화 안에 있는 ‘아이, 좋은 사람, 환경’ 등 부수적 문제를 둘만의 소통으로 이어간다. 여자와 남자의 대화 방식을 보면 두 사람의 생각이 드러난다. 역할 상 남자로서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관객이 둘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자 말을 듣고, 반응하고, 대답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는 온전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수동적 입장에서 대화에 집중한다. 큰 생각을 가진 건 여자라고 보면 된다.”
두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의견은 엇갈린다. 누군가는 여자의 말에 공감하고 다른 이는 남자를 더 이해하기도 한다. 성두섭이 생각하는 남자는 어떤 모습인지 묻자 “초창기 대본을 봤을 때 ‘이 여자 뭐지? 숨 막힌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는다.
“대본을 싹 읽은 뒤 초견으로는 ‘이런 여자랑 어떻게 살지?’ 싶었다. 너무 답답하잖나. 남자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안 맞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기도 했고. 그런데 차츰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너무 사랑하는데 순간적 외로움 때문에 합리화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건 의도적이 아닌 외롭다는 표현이다. ‘네가 나를 안 봐줘서 외롭다’는 표현. 남자가 말하지 않았다면 여자는 이 사실을 몰랐을 거다. 솔직하게 말하는 건 죄책감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남자는 자기 일에 있어서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다. 여자에 대한 사랑을 굉장히 크고 음악 하는 사람이다 보니 마인드도 자유로운 편이다. 여자가 책과 주제를 신경 쓰는 반면 남자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다양하게 생각한다. 남자는 여자의 시선을 닮아가며 맞춰가려 한다. 한 마디로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여자의 뜻대로 남자는 회사원이 된다. 아마 음악을 그리워했을 거다. 이별한 뒤 밴드 공연을 하기도 했잖나. 여자와 헤어져 있을 때 남자는 또 달라진다. 여자 옆에 있을 때는 책 읽고, 주제 고민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는데, 이별 후에는 자기가 해왔던 일상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편하게 사는 모습이 그렇다.”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보편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착하다’거나 ‘성격이 좋다’거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를 지칭한다. 하지만 ‘렁스’에서는 더 넓은 의미에서 좋은 사람에 대해 고찰한다. 작품을 통해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을까.
“작품을 하면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과연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또 ‘내가 그걸 판단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더 모르겠더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무엇이 좋고 나쁜 걸까? 행동에 기준을 두면 될까? 사실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예전에도 착한, 다정한, 도움이 되는, 잘해주는 사람 혹은 안 맞는 사람 이런 표현을 썼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큰 타이틀로는 잘 모르겠더라.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그냥 말로는 ‘좋아~’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가볍게 생각했던 부분이 이 작품을 하면서 어려워졌다.”
스스로 ‘좋은 사람’의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인지 묻자 “100점 만점에 50점”이라고 답했다. “좋은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스스로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고 어디 가서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라는 이유다. 그렇다면 주변 관계자가 보는 성두섭의 모습은 어떨까. 관계자들은 “인간 성두섭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배우로서는 120%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배우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있다는 것이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성두섭의 무대를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니까”라며 극찬했다.
극 중 화두가 되었던 인구절벽, 환경문제 등 이전부터 문제가 된 사회적 위기는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 현실적 이유 등으로 아이 낳는 것, 또 결혼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세상을 위해 아이를 줄이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이를 낳아 좋은 사람으로 기르는 것, 무엇이 더 옳은 선택일까.
“이 작품을 하는 모든 배우가 기후변화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보지 말아야 할 걸 본 느낌이랄까. 작품에서 여자도 공부해서 아는 만큼 더 집착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알게 되니까 무시할 수 없게 된 거다.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일회용 용기에 커피를 마시지만 신경 쓰인다. 죄책감이 드는 것 같다. 다큐를 봤을 때 지구를 위해서는 사람이 줄어야 깨끗해지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의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정답은 알 수 없다. 연습 때까지는 ‘아이를 낳아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렁스’가 그렇다. 계속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무대 위 캐릭터를 통해 현설적으로 관객을 비춰 재미있으면서도 불편하게 만드는 극이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김은정 기자 ekim@tvreport.co.kr / 사진=TV리포트DB, 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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