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에 이어서
[TV리포트=박설이 기자]정서경 작가만의 독특한 이야기, 그리고 분위기가 스크린이 아닌 드라마를 통해 화면으로 구현된다는 것은 그의 시나리오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색다른 재미, 그를 넘어 환희를 선사했다.
# 정서경의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기까지
정서경 작가는 자신의 텍스트가 배우들의 연기로 살아난 것을 보고 “미안했다”고. 작가는 “인주, 인경, 인혜 모두 글로 쓸 수는 있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면서 “매 장면마다 감정이 휙휙 바뀌고, 감정들 사이 연결이 약해서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70분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을 볼 수 있어 감사했고, (배우들이) 힘들어 보여서 미안하기도 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분위기의 미장센이다. 박찬욱 감독 사단인 류성희 미술감독이 참여한 덕이다. 정서경 작가는 ‘절박하게’ 류성희 미술감독과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가는 드라마여야 해서 환상과 현실적인 것 모두의 설득력을 얻기 위해 미술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미술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언급했다. 이어 “절박하게 이 작품을 맡아 달라 부탁을 드렸다. 편집본을 봤을 때 가슴이 철렁하면서 미술을 보기 위해 드라마를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미술과 영상 등 이 작품이 가진 퀄리티를 대본이 따라가 줘야 할 텐데 라는 걱정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의 기원은 역시 소설 [작은 아씨들]이다. 극중 등장하는 죽은 셋째 역시 [작은 아씨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정서경 작가는 “‘작은 아씨들’을 쓰면 네 자매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네 자매를 12부로 쓰기에 (인원이) 너무 많다 생각했다”며 결국 세 자매의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셋째 베스도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는 점을 따온 작가는 “자매들마다 원작 속 극적인 역할을 생각했고, 베스가 가진 역할이 유년기의 종말이라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셋째가 죽음을 보여주며 가족의 공포, 가족이 쫓기는 듯 두려워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죽은 셋째’라는 장치가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했다.
# “베트남전 부분, 부족했다”
‘작은 아씨들’은 방영 내내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1위를 달리다 돌연 공개를 중단 시키는 이슈가 있었다. 베트남 측에서 베트남 전쟁 관련 역사 왜곡을 지적했고, 당국이 삭제를 명령하게 됐다. 이에 대해 정서경 작가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작가는 “돈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베트남 전쟁을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이 전쟁으로) 외화를 벌었고, 경제 부흥을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고 베트남을 등장 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런 맥락에서 베트남 전쟁을 다루다보니, 전쟁에 대한 현지의 관점에 대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며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실 관계를 다루거나 정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베트남 측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한 시장에서 드라마를 집필하며 시청자의 반응에 대해 더 세심하게 살펴야겠다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여성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그리는 덕에 작가를 사랑하는 마니아층도 상당하다. 마니아층이 많다는 것은 호불호 역시 강하다는 의미일 터. 작가는 ‘작은 아씨들’ 속 캐릭터에 ‘불호’를 표한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캐릭터를 호감 가게 그리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청자들은 캐릭터를 좋아할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싫은 지점을 집어넣어 방해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생각해보니 글을 쓰면서 시청자나 관객이 좋아할만한 특성을 시나리오에 한번도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쉽게 좋아할 수 있는 장면이 없더라. 캐릭터를 만들 때 좋아하지 않을만한 장면들, 캐릭터의 결함들부터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결함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사랑 받길 원하는 것 같다”고 캐릭터를 보여주는 자신만의 방식을 전했다.
# 인주와 도일, 왜 썸탔냐고요?
극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오인주와 최도일(위하준 분)의 썸인 듯 동료인 듯 아슬아슬한 관계도 관전 포인트였다. 고수임(박보경 분)만 의심했던 이들의 썸은 결국 애매하게 끝을 맺어 아쉬워하는 드라마 팬들도 적지 않았다.
정서경 작가가 이 썸을 그린 이유는 감독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딱 거기까지였다. 도일, 인주가 썸을 타는 과정도 이렇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 감독님이 좋아하신다. 이런 장면에 감독님이 기뻐하시는 걸 보고 여기까지 왔다”고 썸을 그린 뒷이야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도일과 인주는 만났을 것이라 짐작했다. 작가는 “도일의 ‘또 봅시다’라는 말이, 도일은 마음 먹은 일을 꼭 하는 사람이라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다.
인주와 도일은 썸으로 끝났지만, 인경(남지현 분)과 종호(강훈 분)은 꽉 막힌 해피엔딩을 완성했다. 이는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이루지 못한 로리와 조의 사랑을 이뤄준 작가의 개인적 성취(?)였다고. 정서경 작가는 “[작은 아씨들]의 팬으로서 조와 로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처음 목표를 잡은 것도 조와 로리를 이어 놓겠다는 거였다. 에이미와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나지도 않게 하겠다는 게 주요 목표였다”고 흥미로운 비하인드를 전했다.
# 존재의 이유가 확실한 조연들
세 자매의 조력자였던 고모할머니 캐릭터 역시 [작은 아씨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서경 작가는 “원작에는 대고모가 등장한다”면서,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설정 때문에 인물의 나이대를 올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난한 세 자매에게 사이가 좋지 않은, 롤모델은 아니었던 부유한 고모할머니가 있다면 세 자매의 현실, 가치관의 대립을 보여줄 것 같았다. 고모할머니의 삶의 방식이 세 자매에게 어떻게 보면 좋은 가르침을 주고, 그 가르침과 보호가 세 자매에게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캐릭터를 설명했다.
한편, 배우 진선규의 아내인 배우 박보경의 새로운 발견 역시 이 드라마의 큰 수확이다. 고수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여성 악역,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게 됐을까?
작가는 “시청자들의 걱정과 달리 세 자매가 너무 강해 빌런들이 약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원상아와 박재상이) 돈도, 권력도 많은 사람들이지만 영상에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악행과 폭력, 두려움을 자아내는 인물이 필요했다. 실제로 악해 보일 수 있는 사람으로 고수임 실장을 생각했다. 잔인하고 냉혹한 인물, 악을 구체적으로 구현할 인물로 생각했다”고 고수임 캐릭터를 구축한 이유을 전했다.
극중 인주와 화영의 남다른 우정이라는 관계성도 화제였다. 시청자로 하여금 ‘인주는 왜 화영을 위해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으며, 인주와 화영의 관계가 ‘찐사랑’이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작가는 “화영과 인주의 관계를 설정하며 제 사랑하는 많은 친구들을 떠올렸다. 젊은 시절 친구들이 부모, 자매처럼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단도리 해줘서 여기까지 왔다. 그 친구들에 대해 생각하며 화영을 썼다. 그래서 찐 사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추자현과 만나 화영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정서경 작가는 “화영과 인주의 이야기에 빈 곳이 무척 많아서 상상으로 메워야 했는데, 화영이 싱가포르에서 덤프트럭과 인주 사이 끼어드는 장면에서 추자현이 ‘쟤가 잘못되는 나는 끝났다. 인주를 지키는 게 나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하더라. 그런 종류의 우정이 여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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